두 번째 실패를 통해 배운, 좋은 회사의 3가지 기준
8년 동안 2번의 폐업과 5번의 퇴사를 겪은 스토리와
실패에서 배우고 성과를 냈던 경험을 정리한 글입니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링크)
감사하게도 투자사 대표님의 추천을 통해 빠르게 재취업에 성공했다.
학원 차량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 E였다. 최근 10억이 넘는 투자를 받았고, 공격적으로 채용하며 규모를 늘려가고 있었다. 창업자분들은 명문대 출신이었고, CTO분은 다음카카오 초기멤버, 비즈파트 헤드 분들은 쿠팡, 카카오 등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유니콘 스타트업 출신이었다.
나는 훌륭한 스펙을 가진 분들에게 배울 점이 많을 것을, 당연히 성공한 비즈니스를 만들 것이라 기대했다.
팀의 문제를 해결하면 되니, 포지션도 상관없었다. 처음엔 평사원이었지만, 역량을 인정받아 단기간에 팀장이 될 수 있었다. 이후 웹앱 기획자로 고객이 사용하는 웹서비스, 동료가 사용하는 인터널 프로덕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다. 입사 2년 차에 또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사실 입사 6개월 만에 첫 위기가 찾아왔다.
공동창업자 분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다. 다만 사업이 처음이라 서툴렀던 것 같다. 그들의 철학과 생각이 다져지는 시간에 비해, 회사가 너무 빨리, 너무 많은 돈을 투자받았다. 무리한 스케일업으로 재무 구조가 불건전해졌다. 브릿지 투자로 간신히 1차 위기를 넘겼다.
회사는 거대한 해일에 밀리는 돛단배 같았다.
위기 속에서 나와 가까운 몇 명의 팀원은 매출 성과를 높이기 위해 그로스해킹을 공부했다. 그리고 세일즈 초입인 리드 획득 단계부터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율을 측정하고, 최종적으로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던 그로스해킹 방법론을 논의해 보자고 리더십에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제안의 근거가 부족했다. 하지만 당시 가벼운 논의도 없이 기각당해서 크게 실망했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주말, 연휴를 가리지 않고 밤을 새우며 일했다.
어떤 날은 운행 비용 절감을 위해 차량 운행 스케줄을 모두 뜯어고쳐야 했다. 당시엔 수기로 스프레드시트에 운행 시간표를 만들고 현장에 공유했다. 수천 건의 시트 수정 작업을 일요일 하루 만에 끝내야 했다. 작업 시간을 줄여보려고 엑셀 강의를 들으며 밤새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이 끝난 뒤, 나는 회사에서 스프레드시트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때 경험을 살려 3개월 뒤에 편리한 운행 시간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배포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회사는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새로운 BM도 성과가 시원치 않자, 이윽고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유니콘 출신 시니어들은 위기를 감지하자 빠르게 새 둥지를 찾아 떠났다. 그들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주느라 회사의 런웨이는 더 짧아졌다.
결국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했고, 구조조정을 하였으며, 서비스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막바지에 나는 운영/세일즈 팀을 총괄하는 과분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기울어져 가는 회사를 되살리기엔 경험도 역량도 너무나 부족했다. 서비스 종료를 공표하는 날,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도 있었고 화를 내는 동료도 있었다.
나도 끓어오르는 착잡한 마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나보다 30살은 많은 현장 직원분들께도 직접 해고를 말씀드렸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마지막까지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를 해 줄지 꾀를 짜내야 하는 상황에 자괴감을 느꼈다.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 동료들의 밀린 퇴직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차량 수십대를 중고로 팔았다. 내 차도 없었던 20대 후반의 나는, 차량 매도에선 행정사 수준의 서류 고수가 되었다. 나는 가장 마지막에 퇴사한 직원이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도전도 실패로 막을 내렸다.
나는 굉장히 실망했다.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성공하는 제품, 성장하는 서비스를 만들길 희망했지만, 실패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무렵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교 동기들의 취업 소식이 들려왔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 보상이 좋거나 안정적인 곳으로 간 친구들도 있었고, 전공을 살려 연구소나 강사로 일 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년의 시간 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고향으로 내려가 평범한 삶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끝까지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시작한 이상 끝을 보고 싶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이제 시작한 주니어였다. 축구 경기로 치면 전반전 15분에 2골을 실점한 상황이었다. 남은 75분 동안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은 뒤 왜 좋은 인재들이 모인 조직이 실패했는지,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지 정리해 보았다.
1. 미션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의사결정의 기원을 5 whys 기법으로 분석 해 봤을 때 남아있는 것이 미션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이 이를 납득하고, 동기부여에 가득 차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미션이 없었다. 초기 BM이 다른 지역에 먹히지 않자 팀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회사가 만들려는 “세상” 보다는, 회사가 벌 수 있는 “돈”을 믿고 모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했다. 각자가 가고자 하는 길과, 믿고 있는 신념과, 신뢰하는 방법론이 모두 달랐다. 모두를 하나로 묶어줄 미션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2. 좋은 동료는 커리어보다 애티튜드가 좋은 사람이다.
스펙에 대한 환상이 제대로 깨졌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졌으나, 애티튜드가 좋지 못한 분이 리스펙 받기는 힘들었다. 사람들은 뒤에서 리더십을, 리더십은 팀원을 불신했다. 그 과정에서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는 은근한 반대와 보이지 않는 의심 속에 실행의 동력을 잃었다. 좌충우돌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보단, 러닝머신을 뛰듯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나는 명문대 출신의 창업자나 유니콘 출신의 상급자보다,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더 많은 걸 배웠다.
3. PMF를 제대로 찾고, 스케일업의 속도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PMF가 없는 스케일업은 비상(Soaring)이 아닌 비상(Emergency)이다. 하지만 우리는 PMF를 찾았다고 착각했고, 무리한 확장을 했다. 우리에게 투자한 분들은 빠른 성장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고장 난 레이싱카 같았다. 우리는 차가 고장 났는지 아닌지 확인할 지식도 없었고, 브레이크를 밟을 배짱도 없었으며, 고장 난 차를 운전할 순발력도 부족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회사를 고르기 위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지금도 똑같은 기준으로 회사를 판단한다.)
1. 미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회사
회사의 미션(존재 이유)은 모든 의사결정의 이유다. 만약 “돈을 버는 것”이 회사의 미션이라면, 그것에 충실하면 된다. 없는 미션을 존재한다고, 존재하는 미션을 다른 것이라고 속이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동료에게, 고객에게.
2. 좋은 동료가 있는 회사
태도가 좋은 동료, 서로를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게 업무 실력이건, 인성이건 말이다. 학력과 경력은 좋은 동료와는 큰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3. 내가 쓰는(쓰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
내가 쓰는 제품은 이미 형성된 시장에, 쓰고 싶은 제품은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 시장에 속한다. 전자라면 이미 PMF를 찾았을 확률이 높으니 Growth를, 후자라면 내가 초기 고객일 테니 0 to 1을 하며 PMF를 검증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20여 개 정도의 회사를 추렸다.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는 회사에는 지원을 했고, 공고가 없는 회사엔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 인턴으로라도 일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3개월 뒤,
나는 1년 동안 매출이 10배 성장한
유망한 스타트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 K리그 사무국 입사 제안을 거절하고, 스타트업에 남았다.
- 그 회사는 망했고, 그다음 회사도 망했다(...)
- 실패를 통해 3가지 기준을 세웠다. 미션, 동료, 제품
- 기준에 맞는 회사, 로켓 성장하는 회사를 찾았고, 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