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Why의 힘
8년 동안 2번의 폐업과 5번의 퇴사를 겪은 스토리와
실패에서 배우고 성과를 냈던 경험을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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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개월 넘게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다.
등과 어깨에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았다.
잠을 오래 자도 피곤했다.
심리적 요인도 있었다.
두 번의 실패와, 제너럴리스트라는 전문적이지 않은 경험 때문이었다.
누가 실패를 좋게 평가해 줄 수 있을까?
하나의 직무를 오래 경험한 게 아닌데 괜찮을까?
첫 회사였던 H사에서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클라이언트마다 다른 프로젝트를 담당자 1~2명이 기획하고 운영했기에 일의 A-Z에 대해서 모두 알아야 했다. 자원봉사자 모집을 위한 마케팅, DP할 X배너와 현수막을 디자인하는 등 마케터나 디자이너의 일도 했다. 필요할 때마다 유/무료 강의를 들어가면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일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자발적으로 제너럴리스트가 되었다.
각 기능 조직이 하나로 Align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더 많은 영역을 이해하여 고객의 부정적 경험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불가능한 운행을 가능하다고 세일즈 하거나, 가능한 운행을 담당자가 기한까지 맞추지 못하는 경우, 앱 업데이트를 현장에서 숙지 못해 고객이 탑승을 못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리더십에서 팀 간 이해를 잘 조율하고 명확히 소통해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줘야 했으나 부족했다.
나는 세일즈 담당자였지만, 동료 몇몇과 함께 동선 구성 방법을 배워 세일즈 시 예상 운행 시간표를 고객에게 보여주는 등 문제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앱과 웹 기획을 주도해 고객용 웹사이트와 직원 업무 효율 증가를 위한 인터널 프로덕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엔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1. 나는 다양한 영역을 평균 이상은 하는 사람이라는 것
2. 나의 전문성은 그래서 무엇인가 하는 고민
특히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채용공고를 보면 특정 직무에서 길게, 깊이 있게 경험한 사람을 선호하는 게 훤히 보였고,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회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채용 시장에서 나는 세일즈도, 오퍼레이터도, 마케터도, 기획자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며]
커리어 초기에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고, 회사가 폐업한 경험을 한 것이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났던 일잘러는 넓은 관점으로 숲을 보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숲만 보지 않는다. 숲 안에서 지금은 어떤 나무에 집중하는 게 좋을지, 다음엔 어떤 나무를 키우는 게 좋을지 잘 판단하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을 보면서 나무보단 숲을 보는 사람, 좋은 판단을 내리는 되고 싶었다.
내게는 다양한 직무 경험이 넓은 시야와 좋은 판단력, 전문가와의 협업 능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몇 년 뒤의 이야기이지만, “애매한 직무 경험” 덕에 COO와 PM으로 스카우트될 수 있었고, 고객과 동료를 잘 이해하게 되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서올로 올라온 뒤엔 두통과 근육통,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많았다.
잠을 제 때 자지 못하거나, 고통에 뒤척이다 새벽에 깨는 일도 많았다. 개운하게 일어나지 못하니, 일어난 뒤 일상의 퍼포먼스도 떨어졌다. 퇴사 후에도 불면은 계속되었고, 나는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면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여러 자료를 공부했다.
범인은 5cm 높이의 라텍스 토퍼였다.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된 과정도 꽤 흥미롭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니 기회가 되면 다뤄보겠습니다.)
수면 퀄리티를 높이는 법을 찾아보며, 입사하고픈 회사가 생겼다.
내가 사고 싶은 매트리스를 만든 회사, 제품 출시 후 1년 만에 50배 성장했던 수면 브랜드 S사였다.
그 무렵, 나는 S사의 채용 공고를 매일 같이 확인했다.
S사는 내가 정한 3가지 기준(미션, 제품, 동료)에 딱 맞는 회사였다. 그래서 꼭 함께 일해보고 싶었다. 명확한 미션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내가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들고 있었으며, 제작하는 콘텐츠 퀄리티가 높아 좋은 동료들이 있겠다는 기대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고가 올라왔다. 세일즈 직무였다.
나는 첫 회사의 B2C 세일즈, 두 번째 회사의 B2B 세일즈 경험을 녹여 지원서를 작성했다. 스타트업에 도전한 이유와, 도전의 과정도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족한 지원서지만, 당시엔 나름대로 열심히 썼기에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1달 하고도 절반이 지나는 동안, 나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나는 서류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했다.
지원서를 넣은 사실조차 가물가물 해지던 때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S사의 채용 담당자였다. 연락이 늦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면접 일정을 잡았다.
나는 세일즈에 특화된 인재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면접에서 조금 주눅 들었고, 지원 동기와 지원서에 적은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인상 깊은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면접이 마무리되나 싶었던 순간, 채용 담당자가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앞에 있는 종이컵,
저한테 팔아보실래요?”
우리 앞에는 카페에서 쓰는 크기가 큰 흰색 종이컵이 있었다.
애드립으로 던진 질문 같았다.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 정리되면 시작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보여주자고.
나는 왜(Why)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과 5 Whys를 정말 좋아한다. 500명의 어린이를 위한 운동회를 기획할 때도, 학원 원장님께 공유 셔틀 서비스를 세일즈 할 때도, 고객은 왜 기존 솔루션을 선택했는지 묻는 것에서 시작했다.
Why라고 물으면,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고,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Why의 끝에 솔루션이 있을 때 좋은 결과를 냈다. 생각이 정리된 뒤, 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혹시 이 컵 왜 필요하세요?”
채용 담당자분의 얼굴에서 조금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이어지는 문답에서 고객의 문제를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질문자 : 제가 인사팀이라 회사 비품을 관리하는데, 원래 쓰던 컵이 다 떨어져서 알아보고 있어요.
나 : 지금은 어떤 컵을 쓰고 계세요?
질문자 : 그냥 일반적인 컵을 썼어요. 자판기에서 나오는 그런 컵…
나 : 그럼 평소에 컵을 어떻게 구매하셨어요?
질문자 : 제가 쿠팡 같은 데서 찾아보고 시켰어요.
순간, S사에 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판매 가설을 세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 회사 블로그에, 일을 잘하는 법에 대한 글이 많던데, 인사팀에서도 일 잘하는 문화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질문자 : 네 맞아요.
나는 가설을 세우고 판매 전략을 정했다.
“업무 효율을 높이는데 큰 크기의 컵이 도움 된다는 점을 어필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 : 그러면 저희 컵이 S사 직원 분들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질문자 : ??
나 : 혹시 팀원들이, 하루에 몇 번이나 커피를 마시러 라운지로 가거 같으세요? 대략적으로
질문자 : 음.. 하루에 4~5번? 가는 거 같아요.
나 : 저도 하루에 5번 이상 갔거든요. 그런데 물 먹고 와서, 다시 집중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컵을 쓰고 나서는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질문자 : 어떻게요?
나 : 일반적인 작은 컵을 쓰면 금방 음료를 마시고, 다시 채우러 나가야 하잖아요? 이 컵은 크기가 커서, 물 뜨러 2번 갈 걸 1번으로 줄일 수 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횟수가 주니까, 자연스럽게 집중하는 시간도 길어졌죠.
이후 클로징 멘트를 주고받은 뒤, 상황극을 끝내며 면접을 마무리했다.
나는 며칠 뒤 합격 연락을 받았다.
종이컵 세일즈가 결정적이었다는 답을 들었다. 그냥 문답할 때와는 다른 눈빛을 볼 수 있었고, 그냥 제품의 장점을 나열한 게 아닌, 제품이 필요한 이유를 물어어 보고 거기에 맞춰 솔루션을 제안한 게 인상적이었다고.
과거 실패한 경험에서, Why를 묻는 작은 성공의 경험을 꺼낸 덕분에 원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입사 후, 좋은 동료들과 함께 큰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