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xc) 비키라는 의미는 아니다

배려는 의무가 아니다. 나도 안다.

by 윤진이

임신 5주차, 단축근무 2일차, 오늘은 처음 배지달고 출근하는날.

이게 뭐라고 디게 떨린다.



나는 출근길은 그렇게 지하철이 복잡하지 않고(그래도 부대끼면서 가긴 간다), 퇴근길이 오히려 사람 많은 지하철을 두어대 보낸 후에야 겨우 탑승해서 갈수 있을 만큼 붐빈다. 그래서 단축근무는 출근시간은 동일하게 9시로 두고, 퇴근시간을 4시로 설정했다.

동일한 출근환경, 평소와 다름없는 체형과 복장(아직 신체적인 변화가 나오지 않았다)에서 임산부 뱃지를 달고 가려니 묘했다. 포장을 뜯으면서 얼핏 본 뱃지 포장에는 초기 임산부(~12주)에게는 임신이 티나지 않아도 더욱 배려가 필요하다는 식의 문장이 쓰여있었다.


배려가 사실 의무는 아니다. 나도 안다.

내가 임신하지 않은 시절 노약자석을 대하는 마음을 생각해본다.

내가 노약자가 근처에 오면 자리를 비켜줘야 할 의무가 법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약자석에 대한 배려는 나의 선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태도의 어른(노인인지 성인인지 잘 모르겠는 그 경계의 어른)이 근처에 오면, 그 '당연히 넌 나와야지'라며 나의 선의를 당연하게 종용하는 눈치에 반감이 생겨 더욱 굳건히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끼기도 했다.

그러니 임산부 뱃지를 다는 마음도 비슷해진다. 임산부인 티가 안나니까 이렇게 임산부임을 알리니, 당신이 배려를 해주면 고맙고, 안해주면 어쩔수 없고.... 근데 기왕이면 배려해주면 정말 고마울것같은데.... 그런 마음. 나를 배려하지 않겠다는 사람한테 내가 배려를 종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처지를 알아주고 배려해주면 정말 고마울 텐데......ㅠ_ㅠ!!


'비키라'는 의미로 이 뱃지를 단 건 아니다.

그런데 뱃지를 다는 그 행위가 마치 임신하지 않은 사람(이하 비임신인)에게 배려를 강요하는 행위라고 은연중에 여겨지는 것은 아쉽다. 인터넷 등에서 보이는 임신부 배려석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 가끔씩 뉴스로 나오는 무서운 사건사고들은 다 뱃지가 주는 '종용적인 메시지'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튼,

오늘 출근은 서서 갔고(X), 퇴근은 하차 2개역 전에 내 앞에 자리가 나서 앉아서 왔다(△). 임산부석은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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