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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약사언니 Aug 03. 2020

미국 고등학교 수석 졸업

성적우수 장학금 받고 미국 약대에 입학

 미국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수업내용을 쫓아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국 교과과정을 거치면서 읽고 쓰는 것 위주로 영어 공부를 해 왔기 때문에, 토론을 하고 긴 에세이를 제출하는 것이 주된 방법이었던 미국 교과과정을 따라가기는 벅차기만 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익히기 위해서 디즈니 채널이나 프렌즈 같은 미국 시트콤을 보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시간들마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며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치렀던 시험문제들은 모든 과목이 거의 다 서술형이었다. 영어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했던 나는 답을 알아도 답에 대해 제대로 서술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때문에, 시험기간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화학이나 생물처럼 한글로 번역을 해도 어려운 단어들이 많았던 과목은 특별히 시간을 더 투자하여 책을 여러 번 회독했다. 역사와 같은 시험을 볼 때는 서술형 답안지를 잘 써내기 위해서 시험 범위에 있는 한 마디 한마디를 빠짐없이 문장체 통째로 암기했다. 시험지에 뭐라도 한 글자 써내는 방식으로 시험문제들에 적응해 나가야했다. 또한, 가장 어려웠던 영어시간을 위해서는 방과 후에 영어 선생님과 따로 남아서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모르는 부분을 알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학습하였다. 결국, 이 치열했던 순간들은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감안해야 했던 노력의 순간 들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합격하기 위해서는 5가지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학점 (GPA), 시험성적 (SAT/ACT/TOEFL), 과외활동, 학업계획서, 추천서가 합격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과외활동 (extracurricular activities) 또한 학업성취 이외의 부분으로 중요하게 반영이 되었는데, 과외활동의 경험을 통해 학생의 리더십이나 교우관계를 판단하게 되는 지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학업계획서를 통하여 학생의 능력, 성격, 사고력 등을 어필하여 자기 자신을 차별화하며 드러낼 수 있는 에세이와 같은 자료를 제출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추천서는 1년 이상 학생의 학업 및 과외 활등을 잘 알고 있는 학교 교사나 카운슬러에게 부탁하여 제출해야 했다.


 대학교에 원서를 한 번 지원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Well-rounded person, 거의 만능이 되어야지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입학제도였다. 공부를 쫓아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 치어리더나 오케스트라, 과학부 등 여러 가지 과외활동을 했고, 리더십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학생회 선거에도 나가 서기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면서부터 의학계열의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고, 여러 의학계열의 직업 중에서도 약사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프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약국이었고, 미국이나 한국에서 약사란 가장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맞이하는 직업이기에 그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다. 약학 대학교에 진학을 하기 위해 앞서 언급했던 대학 합격 준비물들을 만들어가며 만능에 가까운 학생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때쯤, 학교 카운슬러에게 호출이 왔다.


 내가 valedictorian (발레딕토리안, 수석졸업)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저 말을 듣고 “really? really? why?"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발레딕토리안은 고등학교 졸업반 전체 수석 한 명을 뽑는 전통으로 발레딕토리안으로 뽑히면 고등학교 졸업식 연설의 꽃인 졸업 연설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각 학교별로 단 한 명의 전체 수석이 선정됨으로 다른 학교의 수석 학생들과 함께, 나의 사진이 지역 신문기사에 실리기까지 했었다. 내가 재학하던 학교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작은 사립학교였는데, 학교 크기를 불문하고 한국인으로서 발레딕토리안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수석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믿기 힘들었던 것이, 그 당시의 나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찼기 때문에 수석으로 선정될 줄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기대를 했던 적도 없었다. 이것은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고 꾸준하게 노력했던 것의 결과였다. 


 대망의 졸업식 날 나는 수많은 미국인 학부모들 앞에서 졸업연설을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a moment like this'라는 미국 유명가수 kelly clarkson의 노래를 졸업생들의 앞길을 축복하는 노래로 개사하여 열창했다.


 그동안의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처음에 미국인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었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상대방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아듣고는 있는지 두려웠다. 

 미국인들이 내 답변을 이해하지 못해서 똑같을 질문을 계속할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자습 시간 중에, 미국인들이 한 시간 만에 학교 숙제를 다 마치고 쉬고 있는 걸 볼 때면, 괜히 나 자신이 모자라게 느껴지곤 했다.


 종종 내가 겪고 있는 이 순간들이 10대 여자아이에게는 좀 가혹한 게 아닌지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려고 노력했고, 목표를 세워 달성하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조국과 머나먼 이 타지에서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영어가 두렵게 느껴졌을 때, 외롭고 우울했을 때, 공부하기 싫을 때 도망쳤다면, 내 인생에서 미국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을 하는 경험은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외로움, 자기 비하, 영어라는 산을 넘지 않았다면, 미국 전 역에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6년제 약학 대학교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약학 대학교에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으면서 입학하여 졸업 때까지 등록금의 상당 부분을 장학금으로 지원받으면서 학교를 재학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달성한 경험들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일확천금(一攫千金)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이야기이기에 더 그러하다. 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우리 집 가훈,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고비를 참고 넘기면 평탄한 길도 나온다고 했다.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꿈과 노력이 가미되면 누구든 ‘고진감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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