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과 같이 살았던 썰, 1탄
일 년에 12kg 쪘던 이유
미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재학 당시 나는 미국인 가정에서 호스트 아빠 엄마를 두고 홈스테이를 하였다. 기숙사가 아닌 홈스테이를 선택했던 이유는 영어를 빨리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공부에 집중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고등학생 때 유학을 간다는 것을 시기적으로 늦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언어라는 장벽을 극복해야지만 학교 수업을 쫓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생활하면서 영어 노출시간을 늘려 언어를 배우리라 생각했던 나의 계획에는 분명한 득과 실이 있었다.
우선 미국인들의 가정은 일상 공유와 감정의 교류를 중요시하는 문화였다. 퇴근 후나 하교 후에는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하루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였다. 나는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재학 시에는 하교 후에 학원이라는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가족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할 때에도 학업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반면에 미국인들과의 생활 속에서는 나 또한 호스트 아빠 엄마의 일상을 듣고 공감을 해주어야 했다. 일방적인 대화가 아닌 상호교류적인 대화였다. 호스트 아빠 엄마가 나에게 해주던 어른들의 일상에 대해 나는 백 퍼센트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시간들은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고등학생 시절의 나의 생각은 좀 달랐다. 이만큼 대화했으면 충분했다. 빨리 공부하러 방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를 붙잡고 계속 대화를 하려던 호스트 아빠 엄마가 조금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내가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 내가 방안에 있는 것이 자신들을 싫어해서 라고 오해했다. 너무 답답한 순간들이 많았다. 공부는 끝이 없고,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었는데, 호스트는 주말이면 산으로 강으로 놀러 갈 계획들을 세웠다. 심지어 주말에 친척집에 방문할 때도 나를 꼭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호스트의 입장을 생각하여 꼬박꼬박 호스트가 계획해 놓은 행사들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반복될수록 과제는 밀려갔고, 학업 스트레스는 더 쌓일 뿐이었다. 한 번은 호스트에게 허심탄회하게 학업이 밀려서 함께 외출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럴 때마다 호스트는 “너는 이미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어,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돼. 도대체 왜 그렇게 공부만 하는 거니?”라며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학 오기 전 유학원에서는 학생들이 호스트와 잘 지내지 못해, 결국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자신들의 나라로 추방당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나는, 호스트와 잘 지내는 게 사명처럼 느껴졌다. 호스트와 잘 지내는 것이 성공적인 유학생활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호스트와 잘 지내고 싶었다. 호스트가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호스트가 해주는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거나, 호스트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호스트의 호의를 거절하기 힘들었던 나는 호스트가 권하는 음식들을 거절하지 않고 다 먹었다. 호스트가 요리해준 음식을 그만 먹겠다고 거절하면 호스트가 자신의 음식이 맛이 없는 음식이라고 오해하고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그렇게 호스트가 권유하는 음식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먹다가 유학 온 첫해에 12kg가 증량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얼마나 살이 쪘는지, 일 년이 지나고 한국에 귀국해서 인천공항에서 부모님을 마주하였을 때, 부모님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예의가 중요한 한국문화에 익숙하여 차마 거절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었던 시절. 그 시절의 줏대 없었던 나의 선의는 결국 내 마음속에는 상처로, 호스트의 마음에는 어리둥절함으로 남았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화합하려면 부끄러움을 무릎 스고 서라도 속 깊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이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지금이나 예나 쉽지 않기는 매한가지. 그래도, 이런 상황들은 아쉬움을 남겼고, 그 아쉬움은 교훈으로 남았다. 그때 그 시절, 내가 나의 감정표현을 현명하게 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우리가 만났던 그 시절, 그 추억들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