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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약사언니 Aug 12. 2020

미국인들과 같이 살았던 썰, 2탄

내가 입주도우미인 줄 아는 호스트 가족들

 미국 첫 해에 함께 살았던 미국인 가정에는 5살 남자아이와 8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호스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불평불만이 있으면 바로바로 부모님께 달려가 고자질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는 함께 소닉 같은 닌텐도 게임을 해주기를 원했고, 여자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틴에이지 스타의 음악을 함께 듣거나 영화를 같이 봐주기를 원했다. 나에게 그들이 함께하자고 하는 일들은 너무 유치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주려고 노력했다.


 당시에 미국 생활을 담아보고자 구입 한 캠코더가 있었다. 내 캠코더를 본 여자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틴에이지 스타의 음악으로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찍어달라고 요구했다. 탐탁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원하는 일이어서 그 이후에도 몇 번 내 캠코더를 이용해서 아이의 뮤직비디오를 찍어주었다.


 뭐 하는 건가 싶었다가도 호스트와 잘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에게 무례하게 행동해도 다 참았다. 불평이 있어도 호스트에게 단 한 번 말한 적이 없었다. 호스트가 나에게 무슨 말이나 부탁을 하면 나의 대답은 거의 “ok” 아니면 “yes"였다.


 이렇게 지낸 지 몇 달이 되었을까,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 아이가 나에게

“Hey nanny, go and clean the bathrooom

(유모, 가서 화장실 청소나 해)"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의 귀를 의심했다.


나보고 nanny (유모, 보모)라고? 나는 호스트를 아빠 엄마라고 불렀고, 아이들은 브라더와 시스터였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 퇴근 전에 아이를 봐주는 babysitter정도로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아이들 입장에서 볼 때 내가 자신의 집 화장실 청소를 해주려고 고용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었을까?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상처로 기억되었다. 아이들의 부모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 아이의 말 한마디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호스트도 나도 서로 잘 지내보려고 했던 것은 확실했다. 단지 각자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고등학생이란 쉴 틈 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대학입시라는 경쟁에서 뒤처진다. 미래를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노력을 해도 모자란 시간을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호스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며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호스트는 내가 노력하던 일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너무나 중요한 시기에 나는 호스트 자녀의 놀이 mate로, nanny로 전략했지만,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호스트와, 아이들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 저들 사이에서 내가 가족이 아닌 입주도우미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왠지 모를 배신감과 갑자기 휩싸이는 외로움에 홀로 눈물을 삼켰던 날들이 얼마나 잦았는지 모른다.  


그 어렸던 사춘기 소녀에게. 위기 였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순간에도 고난은 찾아왔다.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 슬프고 황망한 순간들마저 혼자 이겨내야 했다. 허무한 마음 마자 들었지만 버텨내야 했다.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참았고,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에 견뎠다.


외로웠던 시간들이 지나고나니

문득

다시는 나를 깊은 외로움에 가둬두지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나 자신에게 슬픔과 외로움은 영원하지 않다고 자주 말 해주자 다짐했다.




 광활한 것만 같았던 시간 속에 슬픔은 지나갔다. 그리고
슬픔이라는 감정의 지속성은 무한하지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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