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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 Mar 11. 2019

쓸데없는 말

하우스메이트 T


미야기현(宮城県)에서 온 T상은 두 번째 셰어하우스에서 만난 하우스메이트이다. 나는 평소 웬만하면 그녀와 맞닥뜨리는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이유는 T상이 쓸데없이 말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공용공간을 너무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다른 사람 때문에 생긴 고충을 토로하는 것까지는 공감하며 들을 수 있었으나, 듣다 보면 어느덧 자신의 신세한탄에 이르게 되는데 끊을 타이밍을 찾지 못한 채로 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기 십상이었다.


어느 날 T상과 공용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진이 왔다. 1~2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벽에 걸린 액자와 천장의 조명들이 흔들리고, 바닥도 흔들려서 순식간에 마치 배를 탄 것 같았다.

우리의 대화는 잠시 중단. 긴장과 침묵. 나는 T상에게 (호들갑을 떨고 심하게 겁내는 모습을 보이면 지진을 자주 겪는 나라 사람에게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어때요? 괜찮은 거죠?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 정도는 괜찮은 거예요. 저 동일본 대지진도 겪은 사람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다, 그녀가 온 미야기현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곳. 나는 잠시나마 그녀가 겪었을 공포를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당시의 고통은 당사자들만 아는 것이리라.

T상은 만나면 언제나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연민과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이 주는, 선명한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타바시구(板橋区)에 소재한 두 번째 셰어하우스. 저렇게 좁은 복도에서 T상에게 잡혀 말이 길어지면 퍽 곤란했지만, 이제는 그 숨막힘이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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