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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 Mar 12. 2019

아주 다른 방식의 대화

하우스메이트 M



셰어하우스에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왔다. 일본인 남자로, 두 달만 머물다가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일은 하고 있지 않다고. 사실 이런 정보(?)는 붙임성 좋게 다른 사람들과 말을 잘 나누는 T상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었다. 새로운 입주자는, 낯을 많이 가리는지 주방에서 마주쳐도 좀처럼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나도 낯을 꽤나 가리는지라 둘만 주방에 있을 때에도 대화라곤 일절 없었다.

그러다 붙임성 좋은 T상이 그 새로운 입주자 M상과 대화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다. M상은 친구가 지방에서 결혼을 하는데 그 시기에 맞춰 셰어하우스를 나간다고. 그리고 지방에 다녀오면 다시 어딘가를 찾아서 들어가야 한다고.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고향은 어디인가요?


"도쿄예요. 히카와다이(氷川台)."

히카와다이라면 바로 옆동네가 아닌가. 옆동네에 집을 두고 왜 굳이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는 건가 생각하는 찰나, 내 생각을 읽은 듯 그가 말했다. "집이 없어졌어요."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문자 그대로 '없어졌다'고 했다. 이제 거기에 가도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왜 없어진 건지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나고 자랐지만 이젠 가도 아무것도 없는 고향 바로 옆동네에 셰어하우스를 구한 그에게 '공간'이란 어떤 의미일지 혼자 생각해볼 뿐이었다.

사실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여섯 개의 구에 주소지를 두었던 내가 가진 느낌과 비슷한 것인지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갈 때까지 물어볼 수 없었다. 다만, 별로 할 얘기가 없던 사람이 아닌,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으로 상대를 인식하자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일이 일찍 끝나, 귀가하기 전 잠시 산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히카와다이가 떠올랐다. 사는 동네에서 역 하나를 더 가면 되는 곳이지만 가본 적 없는 나로서는 완벽히 새로운 곳. 나는 일부러 역 하나를 더 가서 히카와다이에 내렸다. 집이 없어졌다는 말,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연민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동네가 궁금해졌던 것 같다.


히카와다이는 조용하고 평범한 주택가였지만, 곳곳에 아기자기한 가게나 이자카야들도 숨어 있었다. 정겹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히카와다이역.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副都心線)으로, 이케부쿠로에서 10분 정도 가면 닿는, 도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지만 한갓진 동네이다.

히카와다이에서 집까지는 약 2Km로, 구글맵으로는 예상 소요시간이 25분이었지만 골목골목 다니느라 실제로는 한 시간 반 이상 걸려서 도착했다.


M상이 살았던 곳을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일부러 찾아가 걸어 보았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는 그 사실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히 따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 하나만 더 가서 내리면 완벽히 새로운 곳에 닿을 수 있듯 사람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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