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여운 하우스메이트들
※경고: 사람에 따라 다소 혐오스럽게 느낄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셰어하우스에서의 일이다. 방에 있는데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세탁기를 돌리러 밖으로 나가자 저만치서 T상이 달려와 "으나상(내 본명), 엄청 큰 바퀴벌레가 나왔어요! 그것도 여자 샤워실에서!" 한다.
"으악,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K상이 대걸레로 눌러서 죽였어요. 우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런 거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면서요."
과연 대자연의 나라. 그렇지만 내가 상상했던 호주는 그런 호주가 아닌데.
"K상은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서 지금 샤워하고 있고요. 근데 복도 바닥에 다리 하나가 떨어져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못 지나가겠어요." 거의 울듯이 말한다.
T상 옆에는 홋카이도 남자 R상도 다가와 서 있었다. 요즘 세상에 남자한테 해달라고 하면 욕먹기 십상이겠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잠시 생각했다. 입 밖으로야 안 내뱉었지만.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R상은 멋쩍게 웃으며
"홋카이도는 추워서 바퀴벌레가 없어요." 한다.
그래요. 징그러운 거 만지기 싫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지. 바퀴벌레 한 번 안 잡아본 것도 아니고, 어릴 때는 쥐 나오는 집에서도 살았었는데, 그냥 내가 처리하자 하고 생각하는 찰나, 이탈리아 남자 D상이 와서 "내가 처리했어." 한다.
"그라치에!"를 외치며 모두 감사의 박수를 치자 D상 왈,
"아무것도 아닌데 뭐. 어제 먹고 오기도 했고."
뭔 소리야?
뭔 소린고 하니, 전날 여자친구랑 새로 생긴 곤충 요리점에 가서 바...그걸 먹었다고 한다. 야무지게 소스도 뿌려서. 왜 그래 진짜? 본인 말로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랬다는데. 과연 미식가의 나라. (아무 거나 막 갖다 붙임)
저만치에 있던 누군가가 그 곤충들의 원산지를 물었고, D상이 그걸 못 알아듣자, R상이 굳이 "국적! 내셔널리티!"라고 알려주었다.
듣고 있던 T상은 절규하다시피
"도대체 그런 걸 왜 먹는 건데!"라고 외치다가 뜬금없이 나를 보고 "으나상은 혹시 누가 백만 엔(천만 원정도) 주면 먹을 거예요?" 한다. 대답은 안 했지만 솔직히 10초 정도는 억 단위 선에서 고민했다.
또 그러더니 누군가 갑자기 한국의 바...그놈은 어떻게 생겼는지 묻는다. 다들 미친 것 같아. 이러면서도 질문을 받았으니 나는 또 진지하게 대답해준다. 바로 그 순간, 정상이란 건 애초부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어처구니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듣다가, 이 어처구니없음이야말로 일상의 본질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