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각장애인 복지 센터 앞에서 만난 사람들
와세다 대학 근처에는 두 개의 지하철역이 있는데, 내가 이용했던 역은 니시와세다역(西早稲田駅)이라는 곳이었다. 역에서 나와 캠퍼스까지 가는 1Km는 평범한 주택가가 이어지는 구간으로 아침에 지각이라도 할 것 같으면 그저 영원처럼 느껴지는, 길고 지루한 골목의 연속이었다. 그 골목 중간쯤에 일본 시각장애인 복지 센터가 있었다.
어느 가을날 오후였다. 역을 향해 가던 길에 복지 센터 앞을 지나는데, 그곳에서 한 청년과 등이 굽은 백발의 노인이 나보다 몇 걸음 앞서 나와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인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을 모시고 복지 센터를 다녀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뒤에서 걷고 있는데 그들의 걸음이 느리고 내 걸음은 상대적으로 빨랐던 탓에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말았다.
청년이 말했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네요."
노인이 대답했다.
"그렇죠. 금방 추워지겠어요. 다음 주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세요."
청년이 물었다.
"나뭇잎 색깔은 어때요?"
"골목에는 동백나무가 주로 있어서 나뭇잎 색깔은 변한 게 없어요. 대신 감나무에 감이 많이 달렸는데 색깔이 아주 예뻐요."
"그렇군요."
"아, 큰길로 나가면 있는 은행나무는 제법 노랗게 물이 들었어요."
그제야 두 사람의 모습을 잘 보자니 등이 굽은 노인의 팔을 청년이 잡고 의지하며 걷고 있었다.
그 주위를 지나다가 시각 장애인과 동행 봉사자들이 함께 걷고 있는 것을 종종 보기는 했었다. 얼마 전에도 역 안에서 피크닉을 가는 듯 들떠 있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과 그들이 대열을 벗어나지 않게 돌보며 표를 끊고 있는 봉사자들도 보았고. 백발의 노인이 아마 시각장애인 복지 센터의 자원봉사자인 듯했다.
누가 누굴 의지하는 데에,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 주는 데에 애초부터 정해진 자격이나 조건은 없는 것을.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걸까.
그 뒤로도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두 사람을 몇 번 더 보았다. 기댈 존재도 없는 쓸쓸한 노년은 상상해본 적이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모습으로는 상상해본 적 없었기에, 내가 등이 굽고 머리가 세어도 팔 하나 내어주는 존재가 되는 일에 대해, 두 사람을 만날 때마다 덕분에, 생각해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