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연애하고 결혼하며, 나는 나와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도, 즐기는 취미도, 읽는 책도 비슷했고 말도 잘 통했다. 연애 시절 만나면 하루 종일 같이 있다가 밤 12시에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했다. 대체 할 말이 뭐 그리 많았을까. 말이 길어져 괜히 싸움붙는 날도 많았지만, 우리의 대화는 끊이질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불같은 연애를 하다 연애 5년차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결혼 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나와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 커다란 카테고리 내 우리의 위치는 방향도, 위치도 완전 끝과 끝이라는 것을.
장녀인 나와 막내인 남편은 흔히들 말하는 남성성 높은 여자, 그리고 여성성 높은 남자다.
나는 왠만해선 꼭 필요한 질문만 하고, 잘 못 알아듣는 부분이 있을 땐 '아, 집에가서 인터넷으로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될 거라 생각하는 거다. 흔히 미디어에서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모르는 길을 가면서도 길을 묻지 않고 헤메면서도 꿋꿋이 자기 길을 가는 남자- 그게 바로 나다.
회사에 다닐 때도 난 질문이 많은 사람은 피해다니기 바빴다. 내 머릿속에는 '저 대리님은 대체 물어본 걸 왜 또 물어보는 거야', '성가셔....', '제발 귀찮게 나한테 말걸지 말아주세요'의 말풍선이 상시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불같이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결혼해서 살며 보니 우리 남편은 정말, 정말, 정말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편은 질문을 미덕이라 생각한다.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게 왜 그 사람에게 폐가 될 수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잘 들은 이야기도 확인차 꼭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그러니까 지금 말씀은 @#$@#%^@#$#@ 라는 거죠?"
남편은 방금 전, 상담원이 충분히 설명한 이야기를 복기하며 재차 확인한다. 내가 듣기에는 정말 불필요한 대화의 단계였다. 다 들은 이야기 아니던가? 사실 남편이 상담원에게 들은 이야기를 상담원에게 재차 확인하는 건 내게 딱히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내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나는 남편의 반복되는 질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아까 다 설명한 이야기를 다시 물으면, 내 얘기를 못 믿겠단 건가? 혹은 내가 설명할 때 귀를 기울이지 않은 건가? 싶어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답이 나가면, 예민한 남편은 공기의 변화를 바로 눈치챘고 결국 남편의 기분도 상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가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반복됐다.
다른 집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부부싸움은 보통 같은 이유로 반복된다. 남편의 반복된 질문과 나의 퉁명스러운 대답은 그중 상위에 랭크된 이유다. 처음에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했던 얘길 왜 또 물어보는 것인가. 왜! 쓸데없이!
하지만 그렇게 같은 이유로 10년 동안 싸우다보니, 내가 남편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만큼 나 자신도 이상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하는 확인차 질문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다면, 반복된 질문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라는 인간은 비정상의 범주에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긴 것이다.
나: "그건 ^&이가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어."
남편: "아, 그래?"
.
.
.
.
잠시 후
남편: "그건은 ^&이가 처리하기로 했다는 거지?"
이런 패턴의 대화가 일어났을 때, 결혼 초반 나의 반응은 이랬다.
"그렇다니까. 아까 말했잖아." (화를 내는 건 아니어도 퉁명스러운 대답)
하지만 반복된 학습의 결과로 이제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됐다.
남편이 반복된 질문을 했을 땐, 빨리 대답해주고 넘어가면 된다는 요령이 생긴 거다.
아무 감정을 싣지 말고, 그냥 '응', '아니야' 둘 중 하나만 선택해 말하면 된다. 괜히 '아까 말했잖아' 같은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건 싸움을 불러오는 위험한 불씨 단어이므로!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붙였을 때는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사과한다.
"아,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내 말이 너무 심하게 나갔어. 미안해. 기분 상하게 만들려고 그런 건 아니야."
그 순간 진심으로, 즉각적인 사과를 하면 그 불씨 단어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공식을 얻고 실전에 응용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결혼 초반과 중반, 나는 (가끔) 정말 이상한 남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남편의 그런 점을 절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넌 이상해라고 규정하며 싸움을 키웠던 나도 만만치 않게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조금만 물러났더라면 사소한 대화가 큰 싸움으로 번져 괴로운 하루를 보내지 않았을 텐데...그래도 10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라 해야할까.
정말 다른 우리, 그래도 함께 살며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