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 -2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by 비해미오

버지니아 울프는 전쟁 사진을 통해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을 경험하게 되며 목격한 충격으로 인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단결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한편 손택은 그러한 의견을 전복시켜 이미지 매체 전반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사람들의 선의가 진실되려면 우선 그 매개가 된 사진 또한 진실이라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하지만 사진 또한 연출될 가능성을 가진 매체라른 점에서 우리는 ‘포토 저널리즘’의 무고함을 의심하고 비판을 준비해야할 의무를 가진다.


사진의 연출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우선 왜 사진이 연출되어야만 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재앙을 끊임없이 보도하는 매체는 전쟁 기획자들의 하수인이 된다. 그것이 대중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이미지는 그 잔인한 기획자들의 의도에 맞춰 선택될 수 있다. 최초로 전쟁터의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종군기자가 상주했던 전쟁은 ‘크림 전쟁’이었다. 하지만 크림전쟁을 기록한 사진은 ‘진실’이 아닌 연출된 결과물이었다. 전쟁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전쟁 참가자의 희생을 독려하는 멋스럽고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어차피 전쟁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해 갈때 쯤엔 전쟁 사진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참혹함과 잔인함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사진 매체는 약소국의 국민들을 철저한 타자로, 강대국의 군인들은 용감한 희생자 내지는 단호한 심판자로 찍어내기 시작한다. 전쟁 난민의 이주를 그려낸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은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의 맨얼굴을 무책임하게 보여주며 심지어는 그것이 비참한 아름다움인냥 그려낸다. 그러나 조지 스트록의 사진은 쓰러져 있는 군인들의 얼굴을 숭고한 희생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다는 듯 은근하게 빗겨간다.


사진은 ‘구도’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일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없다는 손택의 말은‘포토 저널리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구도를 잡는 것은 결국 뭔가를 배제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사진은 객관성의 영역이 확실하게 보장된 영역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으로 타인의 고통을 사진으로 소비해왔던 지난 시간들을 검토해봐야만 했다. 사진은 의도를 가진 채 남는다. 타인의 고통을 다루를 땐 그 의도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의도는 고통스럽지 않은 이들이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근을 겪는 수많은 이름 모를 아이들, 그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연민의 미간을 찌푸리고 순순히 기부를 한다. 그들의 사진은 왜 그리도 처절하게 찍히는지. 나는 왜 그 아이들과 그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당연해서 안심함을 느끼는 상태를 왜 외면했는지. 이런 의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이러한 손택의 말은‘연민’이라는 감정이 마음을 휘저어 놓기 위한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또한 기 디보르의‘스펙터클 사회’개념을 인용하면서 각각의 상황이 스펙터클, 더 자극적이게 보여져야만 그것을 현실로(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이 시대를 비판한다. 결국 아무도 진실을 원하지는 않고 자극적인 재현만을 원하게 되며 타인의 고통도 이러한 미디어의 소비 방식에 예외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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