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 -3

수전손택 '타인의 고통'

by 비해미오

책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품었던 희망을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손택은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사진 매체의 편협한 시선을 논증하기 위해 역사 속 전쟁의 실상과 사진의 간극을 비교하며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논지 전개는 어쩐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칫하면 결론이 전쟁을 보도하는 모든 미디어 매체에 대한 회의주의로 빠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손택은 제프 월의 「죽은 군대는 말한다」라는 사진 한 장을 제시하면서 포토 저널리즘에 새로운 방향을 제안한다. “상상력”을 품게 하는 것이다. 사진 속 인물 누구하나 처절하게 혹은 위엄있게 렌즈를 응시하고 있지 않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이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전투 직후의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상상하게 한다. 고통을 연민으로 그려내지 않지만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방식이다.


연민은 어쩌면 자기만의 몸,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태어나는 유일한, 그래서 이기적인 인간이 가진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택이 매체를 소비하는 대중들에게,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앞으로 마주할 타인의 수많은 고통을 다룰 때 요구하는 것은 명확하다. 타인의 고통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을 멈추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지금껏 우리가 보여왔던 자연스러운 반응인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라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빨리 시들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섣불리 어떠한 동작을 취해 고통스러워 하는 누군가를 구원하려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나를 권위자로 위치 짓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어찌보면 뚜렷한 결론 제시하기를 주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렇게 느꼈지만, 이러한 전개 방식은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자신이 나서 어떠한 조취를 취하는 해결책을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손택의 주장으로 볼 때 필연적인 결론 선택 방식이다. 그녀가 언급한 속담 한 마디가 강하게 와닿았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와 동시에 누군가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이것이 그녀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도록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은 곰곰이 생각해야만 어떤 것이다.

곰곰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손택은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 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아와 기근이 내가 살고 있는 국가, 나를 먹이는 식량 산업에 의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마주했던 일들을 적용시켜보자면 이렇다. N번방에 여성들을 성착취하기위해 모여든 26만명이 드러나기 전까지 문제가 안 됐던 이유는 내가 지금껏 포르노를 어떠한 가치판단없이 소비해왔기 때문에, 수없이 카톡방에 공유되는 ‘무료 국산 야동’을 시청하고 친구들과 껄껄거리며 유희거리로 소비해왔기 때문에, 성인물을 보며 성욕을 해소하는 것이 남성의‘본능’이라 어쩔 수 없고 그걸 참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또 대단한 일이라고 선 그어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성착취에 대한 단계적 허용들이 지금의 다크웹, 텔레그램 N번방 사태를 만든 것이다. 나의 행복이, 즐거움이, 만족이 타인의 훼손된 인격 위에 세워진 견고한 쾌락의 사원이 아닌지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