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자의 관점
12월이 되어서야 그나마 여름 같은 날씨가 찾아왔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에 네 계절이 있는 이 도시는 반팔을 입고 외출하는 방심을 하면 안 된다.
낮이면 태양이 뜨거워 해가 나를 죽일 수 있다면 죽이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지는 저녁이 되면 다시 찬바람이 불어 어서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몇 개월 차에 접어드니 이제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바다와 산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후 3시가 지나면 자전거로 퇴근하는 사람들,
해가 쨍쨍한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푸르른 공원에서 여유롭게 골프 치는 사람들,
점심이나 저녁으로 칩스나 빵을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권태롭고 고립감마저 느끼게 하는 시점이 있었다.
#1
권태로운 시간에서 새로운 취미들을 시작했다. 한참 전에 그만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고, (생각보다 재밌다)
주변 사람들이 뉴질랜드에서 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까지 말하는 골프도 시작하고(아직 재미가 없다)
유행에서 떨어진 고전 소설들을 읽고(열에 일곱은 재미없지만 세 개 정도는 건진다)
그렇게 Slow morning , 내 기준에서는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눈뜨마자마 꽉 막힌 도로를 뚫고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쏟아지는 메일에 불안한 마음으로 메일을 여는 것으로 시작했던 예전의 일상들이 갑자기 멀게만 느껴져서
타입슬립을 경험하는 것 같다. 이전의 일상이, 아니면 지금의 일상이, 어떤 것이 더 비현실적인지 모르겠다.
Around 잡지 81호에서 취미 생활에 대한 글을 짧게 보았는데 한 작가는 취미를 이렇게 정의 지었다.
취미는 ‘무용함이 핵심이다’ > 무용하다는 표현이 쓸모없다는 말로 대체가 되려나? 참 재밌는 표현인 것 같다.
인문잡지 한편 ‘쉼’에서는 쉼이란 ’곧바로 응답하지 않기‘, 일부러 ’ 무용한 시간‘을 보내기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렇게 무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유용한’(쓸모 있는)이라는 형용사는 사람을 수식하기에 감히 어울리지 않는다.
번아웃이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개미가 행복한 베짱이보다 불행하다면 일개미가 너무 가엾다.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 지금 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용한 취미가 가장 나를 비우고 채우기에 유용하다.
#2
이 나라뿐만 아니라 영미권의 특징인 것 같은 스몰톡은 힘겹다.
(이런 맥락으로 영미권+유럽권까지도 고전 소설의 묘사적 설명은 읽히기가 어렵다)
그래서 본론이 뭐지? ‘So what?’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말했다.
아이스브레이킹 같은 일상에서의 스몰톡도 있지만 일을 하거나 컨퍼런스 같은 곳에 가서
신기한 대화들을 많이 한다. 보통 학회 같은 컨퍼런스는 대부분의 시간이 화자가 청자들에게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은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서 그룹을 만들더니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음식물 포장재를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는 방법에 대해서 토론을 시켰다.
오이를 싸는 비닐랩이나 바나나 뭉치의 종이 밴드 같은 걸 없애고 어떻게 음식을 포장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였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대화를 몇 시간이고 나누는 문화가 아직 영어가 짧은 탓도 있지만
본론부터 빨리빨리 보고해야 했던 일의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 사고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게 아직은 힘겹다.
무용한 시간 같지만 사실은 크게 보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들이기도 하다.
문화적 특징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은 있지만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So What도 중요하다.
하지만 How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고 서로 공유할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 싶었다.
#3
중국인이지만 인도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치과의사 아저씨를 만났다.
한식이 너무 좋다고 해서 감자탕을 먹으러 갔다. 그는 중국인도 아니고 인도인도 아니고 키위도 아니다.
인도에서는 중국인이라 따돌림을 당했고, 여기오니 중국인들이 왜 중국말을 못 하냐고 한단다.
잘은 모르지만 어떤 고립감을 느끼고 살았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래도 이곳 키위사람들은 친절하고 나이스하고 너무 좋다고 한다. 다행이다.
감자탕에 사이드디쉬로 양념치킨도 시켰다.
이곳의 음식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키위들은 홈파티에 초대해서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상세히 스몰톡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치킨에 밀가루를 입혀 고추장을 넣고 설탕을 넣고 간장을 넣고 각종 소스를 넣고 기름에 튀겨
정성스러운 음식을 내어주며 정성스레 설명을 해주었다는데
그가 한마디로 그건 ‘That is just 양념치킨…..!‘이라고 했다.
나는 때로 그들의 느리고 장황한 설명에 가끔 혼미함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특히 행정적인 일을 처리할 때)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탄스러운 표현을 아끼지 않고 무용한 본인의 취미에 대해서도
서사적인 표현으로 스토리를 빌드업하는 게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화려한 상업적인 옷을 입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찾아보기는 어려운데
예상치 못하게 학교 분석실의 장비들이 크리스마스 단장을 하고 있었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마음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