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언더스터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의 무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

by Curtain call


[극 내용을 필터링 없이 감상평에 사용하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 혹은 뮤지컬을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타인의 삶을 지켜보며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무대라는 삶 속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기쁨과 슬픔, 고뇌와 행복에 대해서 관찰하며 그들의 손짓, 눈빛에서 내 인생 또한 발견해가는 과정. 평균적으로 약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그 기승전결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부터 이 생생한 무대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연극 [언더스터디]를 관람했습니다. 언더스터디란 공연에서 특정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사고 등의 이슈가 생겼을 때 언제든지 그 배역을 대신할 수 있도록 준비되는 오분 대기조 같은 역할입니다. 본래의 배우에게 무대에 오를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에만 기회가 생기는 존재. 늘 당장이라도 그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준비되어있어야 하지만, 언제 저 빛나는 조명 아래에 설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 연극은 인물들에게 배우라는 직업을 입혀서,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대라는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한, 너무나도 상대적인 공간. 하나의 세상과 같은 그 공간에서 우리는 보통 종종 자신이 정말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비참한 삶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냥 행복만 하고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에는, 요즘의 인생살이는 버거운 일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무대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언더스터디처럼, 우리는 세상의 변두리 조금 어두운 곳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그리고 등장인물 해리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해리는 겨우겨우 따낸 언더스터디 배역이지만, 연습을 하면서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나보다 더 인기 많고 돈 많이 버는 배우가 이미 갈고닦아 놓은 연출대로 연기하기를 바라는 무대감독 록산느와 계속 시비가 붙습니다. 이 세상에 당차게 한 걸음을 내딛고,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보려는데, 계속 남들과 비슷하게 가라,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하는 세상의 시선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와 인기까지 모두 다 가진 것 같은 제이크까지. 해리는 극이 중반에 다다를 때까지 구박받고,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기만 합니다.


해리는 록산느에게 자꾸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배역에서 잘라버리겠다는 통보를 받아가면서도, 알랑방귀 뀌어가며 굽신거리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극 해석을 존중하지 않던 제이크가 "방금 네 연기 너무 괜찮았다"라는 말을 해 주기도 합니다. 제이크와 함께 대사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고, 상대와의 액션과 리액션 속에서 느껴지는 희열. 그것이 해리를 무대에 서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방법으로 느끼는 인생에 대한 열정과 뜨거운 감정.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듯이 말입니다.


이 연극의 매력은, 우리가 단지 딱 봐도 하찮아 보이는 해리에게만 이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벌어들이는 돈으로 보나, 입고 있는 옷으로 보나, 행동거지로 보나 해리보다 훨씬 더 유명한 배우로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어 보이던 제이크도, 해리가 보지 못하는 더 큰 벽에 가로막혀 때로는 해리처럼, 어쩌면 해리보다 더욱더 큰 비참함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이라는 무대 속에서 배우라는 인생들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재능도 뛰어나고 실력도 좋아 보이는 무대감독 록산느 조차도 연출가에게서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로 단 번에 일자리를 잃을 만큼, 사실은 거대한 삶의 공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해리와 제이크, 그리고 록산느까지. 누구 하나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비참함을 가지고 자존심을 구겨가며 그 상황 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의 춤이 그 어떤 삶의 비참함이나, 슬픔을 담은 절규처럼 보이기보다는 우당탕탕 살아가려는 힘찬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음악이나 조명의 탓은 아닐 것입니다. 두 시간 동안 내내, 하찮고 자존심 내려놓고 비참해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에 그들은 무대에서 내려가지 않고 춤을 춥니다. 조명하나, 무대장치 하나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없지만, 항상 예기치 못하게 닥쳐오는 무대 위의 모든 상황에서 어떻게든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배우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우리도 태어나서 살아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맘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춤추듯이. 그렇게 말하면서 이 무대를 마치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정말 잠도 자지 못할 만큼 바쁜 환경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끝이 없는 달리기를 하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시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면, 이게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지금 눈앞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또 다른 문제가 터지겠지... 계속 이어지고 이어져서 끝나지 않는 굴레를 쳇바퀴 돌듯 돌겠지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지나가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저는 매일 쏟아지는 일과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사건 사고들 속에서 살았지만, 그 안에서 정말 필사적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무대 위의 해리, 제이크, 록산느에게서 그 당시의 저를 보았습니다.


무대 위에 어느새 인물들 뿐 아니라 내가 함께 서 있는 느낌을 받았을 때. 제가 공연을 보며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타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 내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그 순간. 쏟아지는 조명과 벅찬 음악 아래 서 있는 배우의 빛나는 눈동자가 마치 내 것처럼 보이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꼭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아름다운 감동실화 같은 것들만 사람을 벅차오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종일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며 웃긴 농담을 던지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삶을 추억하게 되니까요. 혹시 누군가는 이런 발버둥 치는 삶에 대한 이야기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감흥 없음 또한 굉장한 감상평입니다. 그분의 삶은, 브루스 같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행복 속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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