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 더데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by Curtain 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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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내용을 필터링 없이 감상평에 사용하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데빌.

이름만 수없이 많이 들었던 작품을 드디어 봤습니다. 꼭 봐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어도 언젠가 만나게 될 작품은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주 오래전이고, 그로부터 많은 시즌이 지나 연출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젠 대학로 대표 작품 중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주로 중소극장보단 대극장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한정된 작은 무대에서 여러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 함축한 의미들을 해석하는 걸 어려워해서 그렇기도 합니다. 연출만큼은 좀 더 직관적인 것을 좋아해요. 더데빌은 상징과 은유, 그리고 함축의 덩어리입니다. 흥미를 가지면서도 지난 몇 년간 선뜻 볼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본능적으로 제가 어려워하는 장르라는 걸 알아서였을지도 몰라요. 이번에 갑자기 보게 된 건 그동안의 소극적인 관심과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이 시너지를 일으켜 드디어 예매를 할 결심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가 그동안 더데빌을 기피했던 이유가 정확히 들어맞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장면과 연출 속에서 머릿속에서 딴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느 정도의 시놉시스를 듣고 갔는데, 그마저도 몰랐더라면 정말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공연이란 관객의 해석의 자유가 크기 때문에 이런 상징적 표현이 많은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기본적인 틀 안에서 저의 해석을 쌓는 걸 좋아하는데… 더데빌 같은 경우는 혼자서는 원래 주어진 틀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어요. 어쩌면 애초에 틀이 없는데 제가 틀을 찾으려고 해서 더 문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개인의 취향이니까요 뭐…


아무튼 이제 제가 이해한 더데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더데빌은 (아마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저번 몬테크리스토도 그렇지만 파우스트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그 시절 작품이 으레 그렇듯 종교적 색채가 굉장히 짙고, 이런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신앙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말을 일부러 비틀지 않다면 더데빌을 보기 전에도 어느 정도는 이야기의 끝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당연한 걸 공연 보는 와중에는 미처 생각을 못했지 뭡니까.. 화려한 조명 연출 때문에 의식이 점점 사라지는 경험을 했어요(?)


종교의 율법에선 사람을 늘 고통받는 존재로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고통과 고뇌를 이겨내고 그 끝에 이르러 구원받는 존재로써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신앙심을 가진 이라면 그가 누구든 메시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시적으로 보면 나라는 존재의 구원자는 나 자신이라는 의미 같기도 하고요. 옛날 유대인들에겐 예수라는 메시아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니까요,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처럼 앞으로의 메시아도 그 누가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메시아로서의 자격을 기르기 위한 수행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기본적인 정의 때문에, 더데빌에서 시험대에 오른 주인공인 존도 계속해서 달콤한 악과 쓰디쓴 선 사이에서 강제 줄다리기를 당합니다. 그는 무대에서 내내 블랙 X의 유혹에 빠져있다가도,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엔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회개하고 구원받게 됩니다. 더데빌은 이 과정을… 현란한 조명과 라틴어와 다른 공연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음악들로 보여줍니다.


더데빌을 몇 번 더 관람한다면 제 나름의 해석이 더 쌓이고, 의미를 더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더 보지는 않을 것 같아서… 오히려 이번엔 그 어떤 배우에 대한 욕심도 없이 순전히 극에 대해 궁금해서 관람한 거라 극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요 인물이 네 명밖에 등장하지 않아서 장면마다 인물들을 세세하게 뜯어보고 싶은데, 아예 처음 보는 거니까 전체적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어서 캐릭터들의 순간순간의 디테일을 훑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애정 배우가 출연한다면 다시 보면서 세세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싶네요.


여담이지만 제가 거의 유일하게 아는 넘버이자, 그래서 기대했던 곡인 피와 살! 이 노래만 나오길 계속 기다렸는데 거의 마지막이었습니다 ㅋㅋㅋㅋ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아는 넘버… 끝에서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데빌은 아는 만큼 보이는 극이더라고요. 얕게나마 종교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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