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직업의세계

간호사편

by phe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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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렸다. 하루는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만화방에 앉아 있었다. 할 일이 없어 무언가 신나는 일을 찾다 만화카페 간판을 보고 들어 왔지만 테이블 사이사이 배어든 담배 냄새에 골이 아팠다. 흡연실이 따로 있었는 데도 골초들만 드나드는지 담배 냄새가 곳곳이 배여 있었다. 골라온 책들도 십 여분 안에 흥미를 잃고 그냥 주변만 살펴보고 있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오는지......
특별히 할 일이 없던 하루는 소설책 한 권을 꺼냈다. 일인석은 의자가 비좁아 보여 이인석에 앉았다. 쇼파가 직선으로 올라와 있어 목이 수직으로 꺽이는게 하루에겐 다소 불편했다.

'한시간만 있을 건데 이까짓 의자야......'

하루가 고른 로맨스 소설은 재미 있었다. 약혼자의 외도로 상처받은 여주가 태국에서 가이드를 하는데 우연찮게 남주를 만난다는 내용, 그 남주는 대학 때부터 여주를 좋아했으나 고백하지 못하고 헤어졌다가 태국에서 다시 만난 여주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 딱 책의 절반도 못읽었는데 한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하루는 더 이상의 시간과 돈이 만화방에서 소비되는 것이 싫어 그 뒷부분이 궁금해도 책을 덮었다. 하루가 책을 덮자마자 조용했던 스마트폰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톡 알림이 들어왔다.

ㅡ뭐해? 괜찮아? ... 어딘겨?

항상 그녀의 안부를 먼저 물었던 운하다.

ㅡ만화방
ㅡ만화방? 게서 뭐해?
ㅡ뭐하긴. 뭐하겠냐. 나 가야한다. 시간 가.

하루는 카톡을 끄고 주인 앞으로 가서 정산을 했다. 한시간에 1800원. 동전으로다가 요금을 지불하고 책 뒷 내용이 궁금했지만 케케묵은 지하 속 동굴같은 냄새는 더 싫었다.
만화방에서 나오니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휴우, 이제 뭘 한담."

일할 때보다 더 안가는 시간이었다. 병동에서 작은 트러블로 열을 내는 상사에게 한번 크게 대들고 그 뒤로 사표를 던지고 나온 것이 한 일주일 전쯤이었을 것이다. 한 몇 개월 집에서 놀다가 들어간 좋은 직장이라 여긴 부모님은 하루가 병원 사직한 것을 알면 가만히 있을 분들은 아니었다. 이미 취업전선에 나온 다 큰 딸일지라도 엄마는 간호부장을, 아버지는 원장님을 만날지도 모를 일일테니 하루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릴없이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간판들이 각각의 직종을 나타내며 부지런히 시간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이 까페였다. 커피를 내리면서 사색하며 뭔가 떠오르면 글도 써보고, 거리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카운터 안에서 창 밖너머로 쳐다보며 나름의 공상도 하면서 말이다.

카톡.

데이터를 켜두었던가. 생뚱맞은 알림 소리에 그녀를 다시 거리 위의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배터리 절전을 위해 데이터, 와이파이를 끄고 생활하던 그녀였다.
이미 켜져 있던 데이터에 톡 알림까지 들어왔으니 하루는 스마트폰 잠금화면을 열고 카카오톡 버튼을 눌렀다.

ㅡ하루샘아, 정말 안나올 거야?

그래도 그녀를 세심하게 잘 챙겨주던 바로 위 선임이었다. 수선생이 연락해보라고 했던 것일까.

ㅡ수샘이 병가처리로 했대. 수샘한테 저나해봐. 기다리셔.

확인했으니 뭐라도 답을 넣어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강샘 생각만 하면 가고싶지 않았다. 지금은 자기가 하루의 선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소한 일조차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나이도 학번도 하루보다 훨씬 어린 그녀가 단지 그 병원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하루를 사사건건히 태우고 있었다.
하루는 그냥 휴대전화 데이터를 껐다.
조금 더 있다가 수샘에게 연락해 보자 생각하며 초록색 신호등이 꺼지기 전에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거리엔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혹은 점심 먹은 후 산책과 다과를 위함인지도 몰랐다. 어떤 사람들은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있었고, 이른 아침과 저녁시간 보다는 여유로운 발걸음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하루는 마냥 부러웠다. 병원생활 시작한지 이제 만 6년, 점심시간이라고는 밥 먹으러 식당에 갖다올 고작 십 여분이 전부일 때가 많았고, 간호사실에 있는 시간 조차도 일에 쫓기며 어떤 때는 밥 먹을 시간 조차도 없었다. 환자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보며 군침 흘리며 숨가쁘게 지나칠 때도 있었으니까.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여전히 하루는 이질감을 느껴야 했다. 병동에서는 밥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환자와 보호자들, 그리고 경력간호사로 입사한 하루를 기존 간호사들과 차별화 시키는 어떤 무리들 덕에 묘한 이질감은 그녀에게 늘 따라붙고 있었다.

달랑달랑.

"어서오세요."
냉장고 정리하던 직원이 문 소리에 반응하며 자동적으로 입구 쪽으로 나왔다. 점원은 이십대 중후반대의 남성으로 보였다.

"저... 저... 저기요..."
하루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도 없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여겼기에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자 직원의 경쾌한 목소리가 그녀가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하는데 어렵지않게 도와주는 듯 했다.

"알...알바... 구하신다구요."
하루가 눈짓을 하며 구인이 적힌 출입문을 가리키자 남자는 표정이 더 환해졌다.

"언제부터 가능하세요? 혹시 지금부터도 가능해요?"
"지금이요?"
"네. 전 야간 담당인데 사람이 없어서 제가 계속 일했거든요. 그... 그쪽이 오늘부터 가능하다면 오늘 오티 받고 내일 오후시간대부턴 혼자 근무하심 될 거 같네요."
"예, 가능은 한데, 제가 처음이라서요."
"괜찮아요. 그리 어렵진 않아요. 시재점검이랑 재고확인만 잘 해주면 될 거에요."

일을 시작하자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학 때도 안했던 알바라 어려웠지만, 나름 새로운 경험이라 재미있기도 했다. 오후 6시쯤엔 사장이란 사람이 나와, 하루의 신상을 살폈고 사장의 오케이 사인이 나자마자, 남자는 몇 시간이라도 쉬겠다며 밤 9시에 오겠다 하고는 퇴근을 했다. 사장님도 그녀의 인사를 받고는 내일 이력서 한장 갖고오라 하고는 첫 인상이 나쁘지 않다며 어딘가로 나가고 가게엔 그녀 혼자만 남게되었다.

따르릉,
발신자는 운하,였다.
ㅡ어디야?
하루가 수신하자마자 바로 목소리가 쏟아진다.
"나 일 해."
ㅡ무슨일인데? 복귀한 건 아닐테고...
"편의점. 오늘부터 하기로 했어.
ㅡ뭐? 편의점? ...... 괜찮겠어? 어디 편의점인데?
"ㅇㅇ역 앞에 XX편의점. 뭐라도 해봐야지.놀 수는 없잖아."
ㅡ휴우, 알았어. 언제 끝나? 데리러 갈게.
"9시. ... 술 사주라. 술 생각 난다."
ㅡ술은... 하여튼 있다봐.

카톡.

급하게 전화가 끊기자, 기다렸다는 듯 카톡이 들어왔다.

ㅡ샘아, 내일은 출근할 수 있겠니? 오전까지 푹 쉬고 이브닝으로 ...

수샘이었다.

ㅡ전화 좀 줘. 웬만하면 같이 잘 해보자. 강샘은 잘 타일러놨어. 낼 이브닝으로 해주구...

수샘 카톡에 대답할 사이 없이 편의점 안으로 손님이 연이어 들어왔다. 아마 근처 학원 수업이 마친 모양이었다. 애띤 남녀 학생들의 모습의 손님들은 주로 삼각김밥, 일회용 햄버거나 요깃거리들을 계산했다.
분주하게 한 타임을 보내니 금방 9시가 되었다. 원래 야간 담당이라던 남자가 출입문에 매달아둔 종을 울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 괜찮았어요? 할 만 하죠?"
"어유, 바쁘던 걸요. 계산하랴 정리하랴 정신없었어요."
"하루 씨가 일을 타나봐요 큭. 내일은 더 나을 거에요."

편의점에서의 근무 첫 날을 무사히 마치고 나와 하루는 주위를 살폈다. 주변 어딘가에 운하가 있을 거였다. 근처 역에서 깜박이를 켜고 차에서 대기중이거나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며 주변 건물 어딘가에 있을 그 였다. 하루의 움직임을 따라 마침 근처 대기 중이던 차들중 한 대가 역 근처에서 깜박이 등을 들이밀며 신호를 보냈다.

" 아. 춥네. 방금 온 거야?"
하루는 손에 입김을 불며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
"아니죠. 하루님 모시기 위해 기다렸 습니다. "
"왜이래 또. 가자. 나 배고파."

늘 일이 끝날 때쯤엔 특히 하루가 밤에 일이 끝날 때는 운하가 와서 기다리곤 했다. 둘이 사귄다기 보다는 운하는 늘 하루를 기다렸고 하루는 그런 운하의 기다림이 당연한 것 같은 일상이었다. 하루가 말을 하지 않아도 편했고, 하루가 수다쟁이가 되어도 편했다.

"병원은 ...... 관둔 거야?"
하루네 집 앞에 도착해 주차하며 운하가 입을 뗐다.

"어. 관두려고."
"부모님 괜찮겠어? 병원에서 기다린다며? 난... 며칠 휴가 다녀온 셈치고 출근했음 좋겠다. 나중에라도 부모님 알면......"
"괜찮아. 지금처럼 일하면 모르실 거야. 또다시 강샘, 그 인간 보고싶지 않아."
"난 다시 원래대로 복귀했음 좋겠어.편의점 일 할거라면 말이지."
"편의점이라고 무시... 하는 거야?"
"아니. 편의점은 병원보다 더 힘들다고 얘기하는 거야. 위험한 일도 더 많고. 그 강샘보다 더 한 사람을 만남 만났지, 쉽지 않을거라고."
"......"
"오늘은 고생했으니 집에 가서 얼른 자고.
병원에서 부를 때 그냥 다시 출근 해. 너두 알 거 아냐. 다른 데라고 별거 없다는 거. 더 고민하지말고 여기서 더 버텨 이젠 네 경력을 경력답게 만들어봐야지...... 이하루! 힘 내!"

힘 내,라는 말이 정말 따듯하고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수 년간 그녀는 일하면서 생기는 갈등이 있을 때마다 혼자 어쩌지 못하고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아다녔다. 그게 거의 2년이 고비였던 것 같다. 무엇이든 다 받아줄 것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하루는 거절의 표현 역시 익숙하지 못하다 보니 수 차례 예기치 않게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의 고리를 환경과 정면승부하지 못하고 늘 피해 다녔었다. 그러다 보니 경력이 되어 승진의 기회를 포착하기도 전에 떠돌이식 간호사가 되어 버렸다. 이것 저것 아는 것은 많아 졌지만 정착이 되지 않았었다. 그것을 운하가 짚어주었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있었다.

"응... 그럴게. 내일 다시 출근할게. 고마워."
하루는 말을 마치며 운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대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운하의 입술이 열렸고 그의 혀가 그녀의 혀를 잡아댕겼다.


다시 출근하기로 한 건 병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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