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9일

"피지 않았을 뿐, 시들지 않았다.

by pheobe

어느덧 일 년이 이틀 남았다.
달력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간을 세어본다.
잘 살았는지보다는, 버텼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날이다.
봄에는 노란 꽃들이 주렁주렁 피어 있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하루하루가 그 말로 채워지던 계절이었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은 사람처럼 가벼웠다.
여름은 뜨거웠다.
푸른 잎처럼 가득 차 있던 새싹의 꿈은
생각보다 쉽게 지치고, 조용히 꺼져갔다.
땀을 흘리며 견디는 동안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지조차 잊고 지나온 날들이었다.
가을이 오자 세상은 알록달록해졌다.
그때서야 잠시, 인생을 행복이라고 불러보았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좋았고,
그 순간들은 결국 모두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12월 29일.
나뭇잎을 모두 내려놓은 가지들 사이로
오히려 더없는 풍요가 숨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겨울은 비어 보이지만, 끝을 준비하는 계절이 아니라
다음을 감추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도.


아직 꿈조차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다고

혼자 자주 말하지만

여기 한 송이 노란 꽃은

끝내 숨을 거두지 않고 버티고 있다.

피지 않았을 뿐, 시들지는 않았다.


어느덧 남은 이틀

그리고 다시 시작될 또 한 해


노란 꽃 속에 숨겨진 보석이

언젠가는 드러나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다시 숨을 쉬어본다.


햇빛1004


#12월29일

#연말

#한해의끝

#산문시

#오늘의기록

#노란꽃

#마음일기


작가의 이전글소설 직업의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