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TMR의세계
빈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게 좋았다.
밖에선 어딘가로 통화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펼치는 이 시간이 달콤했다. 집에 가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고, 끼니때마다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지만, 지금은 오로지 시험 합격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었다.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먼저 시험을 치르고, 나만 홀로 남아 책을 봤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시험에 합격했고, 본격적으로 텔레마케터 교육을 받았다.
처음에는 ‘잘할 수 있겠지’ 싶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을 소개하고, 스크립트를 따라 읽는 과정 속에서 대부분의 반응이 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냥 끊거나, "이런 전화 하지 마세요."라며 화내는 게 전부일 거라는 걸. 그래도 막상 부딪혀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니 어렵지 않길 바랐는데, 4시간 근무 중 2시간 30분 이상을 통화하지 못하면 근무 시간이 5시간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니. 하루를 버티는 게 점점 더 고단해졌다.
특히 상품 설명이 거의 끝날 때쯤이면, 주변에서 녹취 스크립트를 꺼내 들고 내 통화에 끼어들었다. "이렇게 말하세요."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요."
통화는 내가 하는데, 옆에서 쏟아지는 지시 속에서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다.
주 5일, 하루 4시간씩.
금요일 오후, 텅 빈 사무실을 빠져나올 때면 허탈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 일이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일일까?
"돈 준대요. 돈 주는데, 당신이 다쳐야만 보장받는 상품이에요. 다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보장성 보험이죠."
사는 동안 다치지 않고 오래 살길 바라는 게 당연한 건데, 이 일은 마치 다치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녁, 아이 밥을 먹이고 학원에 보내고, 남은 아이를 달래 재운 후, 밤길을 운전해 병원으로 출근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밤을 꼬박 지새우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몸이 버티질 못했다.
TMR은 조금 가볍길 바랐는데, 퇴근 후 또 다른 고객을 상대해야 하다니. 피로감이 몰아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래, 부업인데… 쉽지 않으면 쉬었다 가자.'
털어놓을 곳도 없어 막막하던 나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엄마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했다.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보험회사 교육비 200만 원은 절대 그냥 주는 게 아니고,
출근 계속해야 하고, 한 달 넘으면 실손보험 포함 1건 이상 해와야 하고,
세 달이 지나면 3건.
그 3건을 채워야 200만 원 + 영업 수당을 받을 수 있어.
보험 3건 중 모두 지인들에게 받으면 다행인데, 안 되면…
우리가 들어야 할 수도 있어.
월급 200 이상 받으려면 한 건당 월 10만 원 정도 내는 보험을 유지해야 하고,
6개월 이상 유지 못 하면 그동안 받은 수당 전부 반납해야 하고…”
나는 "네." 라고 답장하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눈을 감자마자 깊은 피로가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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