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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Feb 25. 2022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즐거웠던 설날에도 가족들과 함께있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그런 이상한 기분. 그건 무언가 알지 못하는 것을 잃어버린 기분과 비슷했다. 찬찬히 생각해보고 살펴보니 그건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이상적으로 존재하는, 아빠와 엄마와 형제남매들과 함께하는, 웃음기 가득한 밤 같은 것들. 그걸 잃어버린 것 같다.



물론 그런 가족을 만난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그런 '잃어버림'을 겪는 사람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아빠가 안계시는 것, 엄마가 일하러 나가서 없는 것.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그래도 복받은거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거였다. 그러니까 더 밖으로 돌았던 것 같다. 집에 가면 엄마도 아빠도 없으니까.


남매들이 있었지만, 뭔가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핵심이랄 것이 없는 기분이었다. 아빠가 안계신 건 기억이 안나니 그렇다 쳐도, 엄마가 없는 게 더 컸다. 분명 살아계셨고 연락도 계속 했고 한달에 한번씩 올라오셨지만, 엄마가 있는 자리는 어른거리는 환영만 남은 공허같았다. 한달에 한번만 분명해지는 그런 자리.


아빠의 죽음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흔적을 남겼다. 그건 지금까지 나도 모르는 서글픔으로 남았다. 아마도 그래서 가족스럽지 못했던 수많은 가족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다.



꾸준히 슬퍼하려 노력한다. 상담에서 이것은 그때 그시절에 충분히 슬퍼하지 못해 남은 잔상같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진심으로 그 마음을 받아들이다 보면 비로소 인정하고 떠나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자꾸만 솟아오르는 '언제까지 그럴래' '다들 괜찮아보이는데 왜 너만' '이제 그만해' '너만 힘든 것도 아닌데 왜' 같은 마음을 흘려보낸다. 그러고나면 "슬퍼" "아쉬워" "나도, 화목한 가족과 함께 자라고 싶었어" 같은 마음이 잠겨있다가 솟아오른다.


가족, 부모의 죽음, 애도와 같은 것들은 꾸준히 내게 화두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고 싶다. 이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삶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바라고, 시련이 오더라도 딱 필요한 만큼만 아프고 지나가길 바란다. 세상의 아이들에게, 울고있는 내면아이를 품은 어른들에게 세상이 조금 더 따듯하길 바란다. 안심하고 푹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생기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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