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미 Aug 13. 2023

최종 합격을 향하여

비전공 무스펙의 HR 취업기 (5)

그즈음 나는 계속되는 면탈로 심신이 너덜거리는 상태였다. 그러나 계속 부딪치고 변화하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면 진짜 멈추는 거였으니까. 그게 더 무서웠다.


당시 그런 나를 본 현직자 세미나의 방장님이 내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모임의 고문이신 A 채용 플랫폼의 B 본부장님이, 자원봉사로 주변 취준생들에게 피드백을 해주고 계신다. 그 분께 한번 조언을 구해보지 않겠냐.


일단 탑3 채용플랫폼에다 본부장이라는 엄청난 직책의 분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기회였고, 무슨 기회든지 그 때는 다 잡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피드백을 받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친구네 회사 면접을 본 게 수요일 오전이었고, 그 피드백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면탈 이상으로 멘탈이 탈탈 털렸다.


본부장님이셔서 그런지, 내 속을 훤히 꿰뚫고 계신 것 같았다.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멘탈이 세차게 흔들렸으나, 티내지 않으려고 정말 무진 애를 썼다. 피드백은 본부장님의 소중한 2시간을 써서 진행되었고, 반드시 이것들을 기억해서 적용하고 말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내 이성과는 달리 마음은 너무나도 속상했다. 부족함을 지적받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나는 그게 유독 힘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금요일 밤에도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주룩주룩 쏟았다. 버틸 수가 없어서 비싼 연어 초밥을 먹었다. 그게 나만의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연어를 배부르게 먹고나서는 코인노래방에 갔다. 울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건의 지평선, 오르트구름 같은 것들.


어둠만이 나의 전부였던 동안
숨이 벅차도록 달려왔잖아
Never say “time's up”
경계의 끝자락
내 끝은 아니니까
울타리 밖에 일렁이는 무언가
그 아무도 모르는 별일지 몰라
I wanna wanna be there
I'm gonna gonna be there
벅찬 맘으로 이 궤도를 벗어나
Let's go!
새로운 길의 탐험가
Beyond the road
껍질을 깨뜨려버리자
두려움은 이제 거둬
오로지 나를 믿어
지금이 바로 time to fly
두 눈 앞의 끝, 사뿐 넘어가
한계 밖의 trip, 짜릿하잖아
녹이 슨 심장에 쉼 없이 피는 꿈
무모하대도 믿어 난

- 윤하, 오르트구름


그리고 집에 와서 기절했다. 그 즈음 마음이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하도 울어서 남자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작은 몸에서 눈물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나오냐고 할 정도였다.


스스로 가장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왜 진로를 바꿨냐는 질문이었다. 평소에는 "NGO에서는 다양한 직무를 경험해볼 수 없었기 때문에 퇴사하고 HR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본부장님은 그걸 듣더니 전혀 솔직하지 않아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은 돈 때문이지 않냐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스러웠다.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말씀은 해주셨지만, 그 말을 어떻게 내 말로 다듬어야될지 내내 고민을 했다.




면접과 피드백이 있던 그 주 일요일,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떨어진 것 같다고. 주간 회의 안건지는 모두에게 공개되는데, 거기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이미 다 포기한 상태였기에 심적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친구에겐 괜찮다고 했다.


그 다음주 화요일, 여느 때처럼 알바를 갔다. 메가커피에서 알바를 한지 거의 2년이 다 되어서, 숙련된 솜씨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날도 손님은 별로 많지 않았고, 이 지겨운 메가커피에서 언제 벗어나나, 마스크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순간, 직감했다. 면접 결과 연락이다. 그런데 메일이 아니라 전화로? 왜? 설마? 설마?


원래 알바 중에는 전화를 받지 않지만, 이건 꼭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전화를 받았다.

@@님 맞으시죠? 아, 네. 면접 결과 때문에 연락 드렸는데요.


대면 면접 합격 축하드립니다.


예??????


제가요??? 라는 말은 삼키고, 일단 엄숙하게 아,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 말은 더 놀라웠다. 최종 화상 면접을 잡아드리려고 하는데, 대표님 일정이 빡빡하셔서요, 혹시 오늘 밤 10시 이후나 내일 오전 10시 이전에 괜찮으실까요?


나는 일단 무조건 YES 였지만, 그날 밤 10시에 알바가 끝나고나서 11시에 HR동아리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해당 일정을 한번 바꿔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약간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퍽퍽 때렸다. 이게 실환가? 실화인가? 나 이 지겨운 메가커피 벗어날 수 있나? 진짠가? 최종면접이라고? 최종 면접은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떨지 모르겠는데 어쩌지?? 어쩌지??


일단 알바중이었기에 주문을 쳐내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나 대면면접 붙었다는디??? 나 어떡해??? 어떡하지????


친구들은 축하한다며 일단 진정하라고 했다. 최종 면접이면 그냥 거의 통과 아냐? 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내게 자기 회사를 추천해준 친구는, 대표님 성격이 그냥 쉽사리 통과시킬 사람은 아니라며 준비는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 마지막 관문이다. 정신차리자.


일단 동아리 회의를 미룬 다음에, 다시 인사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 밤 11시 이후에 가능하다고 하니, 최종 면접이 진짜 그 때 잡혔다. 그때부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간은 7시 30분, 준비할 시간 2시간, 카페 마감 끝내고 집가면 10시 30분, 준비하고 바로 면접 11시....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는 선택지에 없었고 일단 해야됐다. 최종면접이면 인성과 로열티 측면에서 물어볼 것임을 예상하고, 그동안의 면접 복기록을 핸드폰에 노션으로 정리해뒀기에 폰으로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정리했다.


2시간동안 빡세게 준비한 뒤 마감을 하고 집에 가니 10시 30분. 바로 풀메이크업을 하고 정장을 입었다. 11시, 최종 화상 면접이 시작됐다. 대표님은 어딘가 굉장히 나른한 인상이셨고, 뭔가 정식적인 면접 느낌이라기 보다는 궁금한 걸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다만 내 이력이 활동가로 워낙 특이해서 그런지, 보통은 정치 성향을 물어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게는 왜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물어봤다. 나도 그 부분이 궁금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기에 할 수 있는 선에서 대답했고, 왜 진로를 바꾸었는지도 솔직하게 돈과 성과지향성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원래 같으면 꾸며낸 대답을 했을 텐데, 그 직전에 피드백에서 그게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도 했고, 대표님 스타일이 워낙 직설적인 질문이라 속내를 다 보일 수 밖에 없기도 했다. 그래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내가 워낙 떨어서, 자기도 그 활동들에 대해 반감이 있거나 하지 않고 대화도 많이 해봤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질문을 한 20분 하시더니, 한 20분은 본인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하셔서 몇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고나서 대표님 얘기를 한 20분정도 하고, 거의 마지막 쯤 "일을 잘 하냐"라고 물어봤다. 대면 면접 때 본인의 업무 능력을 점수 매겼던 게 기억나, 8점 정도라고 대답하고, "그 이유는 일을 맡으면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기 때문이고, 2점을 뺸 이유는 항상 부족한 게 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내 생각에도 대답을 잘 했고, 나중에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해주니 대표님 맞춤형 대답이라고 했다.


그리고 면접은 여기에서 종료라며, 면접 보기 전부터 뽑을 생각이었고, 합격이라고 알려줬다. 나중에 직접 이 회사의 채용 담당자로서 운영을 해보니, 이 최종 면접이 당연히 합격인 것도 아니었고, 대표님이 사람 보는 것도 꽤나 까다롭게 보시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그렇게, 100인 규모의 스타트업에 HR 담당자로 4개월 전 취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초봉은 제발 내 생각의 최저 하한선보다 밑은 아니기를, 아니 그보다 밑이어도 갈 생각이었으나 다행히 딱 그정도 선이었다. 바로 입사 의사를 보내자, 그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입사를 하게 됐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녹록지가 않다. 취업 때를 회상하면서, 그 땐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지금도 열심히 사는 건 마찬가진데, 그때보단 좀 덜 절박하지 않나 싶다. 3개월간의 수습평가를 마치고, 이제 정말 회사의 일원으로서 업무 능력을 성장시키려고 아둥바둥 하고있다.


때로 내가 당차게 했던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어쩌구”가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내가 정말 그만큼 하고있나?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분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본인도 그렇다고 했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니구나. 울며 웃으며 어떻게든 적응해나간다.


워낙에 이런 사기업의 문화도 낯설고, 사회생활이랄 것도 안해봤기에 정말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간만에 글을 쓰며 취업준비할 때를 오랜만에 생각하니 즐거웠다. 또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는 선택지에 없었고 일단 해야됐던 시기, 지금의 나는 그만큼의 절박함을 가지고있나 돌아보는 기회도 되어 좋았다.


이 다음 글부터는, 20대 후반의 사회초년생이 겪는 여러가지 어려움들과,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들을 한번 써보도록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회사 지원해볼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