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 무스펙의 HR 취업기 (4)
당시 나는 패배감에 찌들어 있었다.
1년을 해도 안되고, 정말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도 잘 안됐다.
▶ 그 회사 최종 면접 떨어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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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연말에는 코로나도 걸렸다. 신생아였던 조카와 함께 살고 있었어서, 내가 이 집에서 격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계신 강원도의 한 공장으로 격리당했다. 엄마는 정선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데, 그 옆에 있는 공장에 점심 식사도 제공하고 계셨다. 공장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 사는 방이라기보다 그냥 공장 식당 안에 딸린 공간이었다. 거기에서 합격 결과도 기다리고,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외롭게 아파하면서, 2022년 12월 31일과 2023년 1월 1일도 거기서 보냈다. 항상 떠들썩하게 가족들과 연말연초를 보냈던 나에게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또배기 외로움을 겪어보면서 새롭기는 했다.
그 즈음 데이터분석으로 직무를 전환해보면 어떻냐는 언니의 제안도 있었어서, 책도 공부하고 지원도 해봤다. 그런데 언니의 옛 회사 팀장님이셔서, 그래도 면접은 보게 해줄 줄 알았는데 서류에서 광탈했다. 허무한 마음에 이제부턴 정말 HR 뿐이다 하고 면접을 또 보러다녔다. 그래도 탈락했다. 이게 되긴 되나... 언제까지 하나... 괴로워하던 차에, 슬픔을 토해내는 내게 한 친구가 동아줄을 보내왔다.
우리 회사에 인사팀 뽑는데, 지원해볼래?
HR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로,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서 1년 근무하고 퇴사한 뒤 데이터분석을 배우려고 한다고 했다. 자기가 나오는 자리에 공석이 하나 생기는 데,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바로 또 열심히 써서 지원했다. 다행히 서류에 합격했다. 아마도 친구 추천이니까 얼굴은 봐야겠다 싶었던 건 아닐까? 면접을 보러 가기에 앞서, 친구를 열심히 괴롭혀가며 JD를 파고들었다. 사실 친해졌다고 보기도 애매했고, 그 때는 아직도 서로 존댓말 하고 있을 때라서 미안했지만 그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면접은 롯데타워에서 진행되었고, 엄청나게 멋있어보였다. 꼭 들어가고 싶어졌다. 다대일 면접은 면접관이 무려 5명이었고, 겨드랑이가 촉촉히 젖었지만 어쨌든 열심히 대답을 했다. 그래도 대답을 다 잘 한 것 같았다. 이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정말? 제발?
친구는 그날 면접이 끝나고 롯데타워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줬다. 그곳에서 보는 석촌호수는 정말 예뻤다. 꼭 붙어서 이 전경을 보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인가 그 다음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소식 들었냐고 했다. 전화를 받기 전부터 나는 긴장해 있었다. 아니, 아직 못들었어. 아, 그래?... 소식 들은 줄 알고 전화 건 건데...
탈락이라고 전달받았는데... 메일은 아마 다음주에 나갈거야. 아쉽다 진짜...
피가 또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면접관 중에서 나를 매우 좋게 본 분이 있었고, 방금 그 분과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인데, 정말 정말 아쉽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분이 의견이 달라서 결국 탈락이었고, 거의 싸우다시피 했다고 했다. 그게 정말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 고마웠다. 에이, 이 회사 별로야! 안오는게 나아! 정말 더 좋은 곳 갈 수 있어. 응원해주는 말에 진심으로 고맙다고 얘기했다. 마음 한 켠은 어두워졌다. 또 아니구나. 또.
그로부터 며칠 뒤,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됐다. 인문대학 학생회장 할 때 부학생회장, 집행위원장 했던 친구들로, 21살때부터 6년 넘게 친하게 지내오는 친구들이다. 둘 다 1년 전 쯤 취업했고, 나만 취업을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행복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애들이 회사 얘길 하는 것도 부러웠고, 내 근황이야 취업이 안된다는 소식밖에 없는데, 그 얘기를 해봐야 어두운 얘기라서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내 상황이 너무 속상하고 서글펐다.
그 즈음의 나는 전략을 바꿔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대기업 올인 전략을 버리고, 이제는 할만큼 해봤으니까, 눈을 낮추기로. HR은 100명, 300명 단위가 중요하니까, 100명만 넘으면, 취업하면 들어가기로. 친구에게 속상해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자, 친구가 말했다. 어, 그럼 우리 회산데?
HR 매니저 뽑던데, 지원해볼래?
스타트업을 다닌다는 얘긴 했었는데, 거기가 어딘지는 몰랐다. 애초에 나는 스타트업을 갈 생각이 없었고 대기업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중견기업이자 대기업 자회사가 될 거였던 그 회사 면접을 떨어지고나서, 나는 전략을 바꿨다.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신 자리에서, 나는 그럼 지원할래! 라고 했고, 친구는 서류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 즈음 나는 도대체 안되는 이유가 뭔가 싶어서 포트폴리오까지 열심히 만들었다. 내가 한 경험들이 자소서에 잘 드러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열심히 만든 포트폴리오를 같이 보내고나서, 그 다음주 수요일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또 친구 추천이라 그냥 보러 오라고 기회를 주는 거겠지 싶었지만, 엄청 열심히 준비해서 갔다.
스타트업이라 그런지 공유 오피스가 자유로워보였다. 보통 면접 전에는 혼자 대기하니까 10분 정도 혼자 준비하는데, 특이하게도 안내하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 맞장구를 치면서 대답을 하다보니 호록 시간이 지나서 면접 시간이 되었다. 소름끼치게도 날 안내하던 사람이 면접관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직무는 이렇지 않은데 HR 면접이라 이랬던 거였다)
그리고 이 면접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길었다. 1시간 15분동안 거의 곳간까지 탈탈 털린 느낌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대답을 다 했다. 특이하게도 면접관이 1층까지 배웅을 해주었기에, 없는 에너지를 끌어모아 너스레를 떨며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고, 근무중이었던 친구를 불렀다.
나 잘 했겠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그래그래, 잘 했을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눈물을 쏟았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라 아쉬워서.
그날 밤엔 맛있는 걸 먹고 일찍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