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by off

"사랑은 뜨거운 물에 담겨 봐야 안다. 티백은 뜨거운 물을 만나야 알 수 있듯이"

요즘 보는 변호사 드라마 여주가 속물 남자친구의 인성을 마주하고 한 말이다. 그렇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찍어 먹어봐야 알고, 내 사랑들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시련 속에서 밝혀지며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산을 오르면 알 수 있다. 대체로 삶의 중요한 것들은 완벽한 조건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는 [도중]에 짠하고 나타나 성장이라는 요술을 부린다. 그래서 아끼는 사람의 실수는 곁에서 그저 바라봐 주고 실수를 소중하게 다루는지, 힘들어하면 도닥이며 곁을 지켜야 도리다.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숭고한 과정을 뺏어오면 안 된다.

요즘 사랑하니까라는 공포스러운 이유로 (이런 이유로 이별하자는 사람은 대체로 믿고 걸러야 한다.) 남의 소중한 실수 성장과정을 뺏어 사람을 실패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서울대 조교가 어떤 부모에게 받은 메일을 공개했다.

[ 우리 아이는 영재 출신이다. C 학점을 받았을 리 없다. 성적을 정정해달라.]라는 내용이었다. 부모로는 마음 한 귀퉁이 조금 진짜 조금 이해는 된다. 우리 아이 불행을 좋아할 부모가 있을까. 할 수 있으면 모든 능력을 동원해 우리 아이 불운만은 모두 걷고 행운만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고 이해하지만 나쁜 욕심이라는 것, 아이를 망치는 행동과 말이라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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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우리는 불운을 겪으면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결론을 무의식적으로 내린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불운해서 대비도 하고 돈도 모으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왔다. 실수하면서 관계가 더 좋아지기도 했고 불운해서 겸손을 배우기도 했다. 거기다가 주변에 누가 봐도 필연적 부자 집안에서 완벽한 외모라는 조건의 행운아들 중에도 불행해 보이는 이들도 많다. 즉 우연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우연하게 걸려든 것들이 죄다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서울대 C 학점을 받은 아이의 불가항력적인 한 학기를 상상해 본다. 수업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모른 부분이 나와 학점이 낮을 수도 배가 아팠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시험 치는 날 첫사랑을 발견하고 한 정거장을 지나쳐 간 건 아닐까. 시험을 쳤던 강의실은 수맥이 흘러 그 학생의 기운을 쭉 빠지게 했을 수도 있다. 운과 실력이 뒷죽 밖 죽인 채 우린 살고 있고 그래서 겸손하다. 어떤 것도 원인을 잘 알 수도 결과를 잘 알 수도 없어 다시 하고 또 해본다. 우연과 필연이 나란히 걷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완벽한 성공과 결과만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내 아이라 하더라도 필연적 행운만 따라야 할까?


불운을 행운으로 둔갑하게 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불운한 일은 갑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느닷없다. 그런 점에서 불운은 강력한 의지를 가볍게 제압해버린다. 즉 통제 영역 바깥에 있다. 그런데 불운을 다루는 내 태도에 따라 내 마음에 따라 나라는 존재는 달라진다. 얼렁 설렁 그 불운을 해결하고 실수를 만회하다 보면 나 자신이 좋아지기도 하고 스스로 해결법을 찾아서 행복감이 슬슬 생겨나기도 한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에서 암 환자인 미야노 마키코는 우연하게 찾아온 질병을 마주 보는 글들을 죽기 직전까지 남겼다. 질병을 자기가 좋아하는 글로 생각으로 다루며 죽음을 수용한다.

그리고 눈물 나게 감동적인 글로 필연적으로 행복하고 싶어지는 선언을 한다.

" 불운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 제한이 있고 불운이 닥쳐왔지만 스스로 인생을 놓아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는 불행하지 않습니다."라고.


나는 또 상상한다. 서울대 학생은 지금 불행할까? 행복할까? 쉽게 결론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험에 조금 우연하게 실수했을 뿐인데 기사로 확실하게 실수가 박제되어 버린 것은 알겠다. 실수는 잊어줘야 실패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죄다 잊어도 나만 아는 부끄러움은 종종 실패로 이어진다. 아이에게 부끄러움을 남겨 불행하게는 만들지 말자. 적어도 어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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