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은 피곤, 한숨, 설레임 그리고 각종 냄새로 가득하다. 배달 기사님들이 들고 계신 음식 냄새는 먹음직스럽지만, 동시에 저녁 과식을 부추겨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요즘처럼 폭염이 이어질 때는 이 냄새들이 더 강하고 때로 좀 무겁기도 하다. 얼마 전 쿠팡 기사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연신 흘린 땀냄새가 났다. 잠시 땀을 식힐 틈도 없이 로켓처럼 달려야 하는 일을 생각하니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냄새난다며 코를 막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자, 기사님은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셨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불편한 마음을 지고 내렸다. 집으로 들어가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다.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떠올랐다.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된 바틀비는 묵묵히 일만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안하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라는 선택으로 자신의 노동 방향을 정한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안하기 저항에 해고할 궁리를 하다다 그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바틀비의 가난하고 쓸쓸한 삶에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는 그의 삶을 품어내지 못했고, 바틀비는 끝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바틀비의 죽음은 비정한 자본주의를 이겨내지 못하는 약하디 약한 형제애, 연민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누구나 비참한 결말의 바틀비가 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도 함께 한다.
오늘날의 기술은 속도를 무기로 우리를 재촉한다. 로켓배송이라는 이름처럼, 사람마저 기계처럼 움직이게 만든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빨리 받아야만 하는 걸까? 우리가 조금만 천천히 기다린다면, 노동자들은 더 숨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땀냄새를 불쾌해하고 불편해 하는 마음의 한켠에는 조금 늦게 물건을 받는 불편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마음도 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안에서 진정한 선택권은 ‘하지 않을 자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유는 넉넉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특권을 너머 서는 용기를 내야한다.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야 한다. 기사님께 작은 음료를 건네는 마음, 로켓배송 대신 일반 배송을 선택하는 실천, 더 많은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 그리고 연대의 서명과 행동들. 이 모든 것은 작지만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빠름이 곧 편리함이라는 세상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더 인간적인 삶을 택하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지켜내는 길이고, 택배 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우리가 불편함 대신 선태간 기다림이, 택배 노동자의 숨 고르기가 되고 땀을 식힐 여유 시간이 되길 바란다.
#쿠팡로켓배송반대#택배기사처우개선을요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