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반수생의 취향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 나영웅

by off

의예과에 합격한 재수생은 표정부터 다르다.

불안보다 당당함이 먼저 자리한다. 1년의 고생은 해볼 만한 경험이 되었고, 그 시간 동안 체득한 공부법은 이제 후배들에게 전해 줄 성공담이 된다.

“선생님, 사탐런이 무조건 답인 것 같아요.” 무조건에 대해 무조건적 표정이 어린다.

작년에 과탐 두 과목을 선택하고 수능 최저를 맞추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는 듯했다. 사회문화를 선택하고 단 3개월 만에 1등급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입가에는 자신감 어린 미소가 어른거렸다. 나는 그 웃음이 싫지 않았다. 다만 저 아이의 사회적 자본, 관계적 자본은 숨어버리고 의예과 합격이 가진 힘이 교실 안에서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가 조금 염려되었다.


선배와의 대화 이후 지혁이가 상담실 문 앞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 저 반수하고 의예과 가야겠어요. 사탐으로 변경해야겠어요.” 공대를 합격한 지혁이의 눈빛은 이미 결심한 사람의 것이었다. 과학 쪽으로 진학한 졸업생들이 공부를 해내는 어려움을 이야기해 주었고, 사탐 선택의 긍정적인 면도 균형있게 말하려했다. 양쪽 모두는 사실이니까


지혁이는 요즘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과탐 두 과목 선택이 얼마나 힘겹고 사탐런이 얼마나 쉬운지,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평소에 사회과목에 대한 관심이 1도 없는 아이였는데...

지혁이의 눈빛과 말은 어디까지가 자기 생각이고, 어디부터 시대와 사회구조의 분위기이며 흐름일까.

나는 나영웅 작가의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를 떠올렸다. 이 책에서는 철학자 브루디외의 이론을 바탕으로 취향과 선택이 결코 개인의 취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환경 속에서 길러진 감각의 결과임을 작가의 서사와 연결하여 쉽게 설명해준다.

나영웅 작가는 영문과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끊임없이 성찰해 왔다. 사회학은 그에게 도망이 아니라 버팀의 도구가 되었고, 취향과 문화자본, 아비투스를 이해하는 일은 흔들리는 순간마다 자신을 붙드는 필살기가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지금 반수를 고민하는 지혁이에게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사탐런이라는 순간의 기술 하나가 아니라, 선택 이후에도 스스로를 설명하고 견뎌낼 수 있는 버팀, 저항, 성찰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부르디외가 말한 아우라는 거기서 만들어진다.


나는 지혁이에게 사탐을 하지 말라고도, 과학을 끝까지 가져가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 선택이 자신을 더 편안하게 해 줄지, 아니면 계속해서 ‘이래도 됐을까’라는 질문을 남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반수를 결심한 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성적을 올리는 전략보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자기 언어,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틀린 선택보다 후회할 선택을 더 두려워한다. 그래서 가장 안전해 보이는 길로 빠르게 이동한다. 나는 그 속도가 조금 느려져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사탐을 선택해도 좋고, 반수를 해도 좋으며, 의예과를 향한 꿈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다만 그 선택이 분위기에 떠밀린 결정이더라도 스스로를 버텨낼 수 있는 언어는 자신만의 취향 자본으로 만들어 저항하기를 바랄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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