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킹스 스피치>와 어느 심리학 교수의 고백

by 동동이 할아버지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에는 평생 말더듬증으로 고통받던 영국의 왕 조지 6세가 등장합니다. 당대 최고의 의사들은 입안에 구슬을 넣고 말하게 하거나 담배를 피우라는 등,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고통스럽기만 한 '기술적 처방'을 내립니다. 당연히 왕의 말더듬증은 고쳐지지 않았죠.

그를 구원한 것은 학위도 의사 면허도 없던 괴짜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였습니다. 라이오넬은 왕을 "폐하"라 부르는 대신 "버티"(Bertie)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뻣뻣한 왕실의 격식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갑니다. 결국 왕의 입을 트이게 한 것은 화려한 의학적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과의 안전한 '관계'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심리상담이나 치료가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의 산물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T. 핸슨(James T. Hansen)은 그의 저서 What Makes Counseling Effective?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권위 있는 이론과 기술이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한 평생을 바쳐온 학문적 도그마(Dogma)를 깨부수고, 진정한 치유의 본질을 찾아가는 지적 여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12시간의 대화, 그 밀실의 미스터리


상담이라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면 참 기묘합니다. 방 안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은 고통을 이야기하고, 한 사람은 듣습니다. 몇 달에 걸쳐 총 1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이 일련의 대화가 끝나면,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은 "훨씬 나아졌다"라고 말합니다.

지난 100년간 수많은 연구가 증명했듯 상담은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낫게 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학자들은 길을 잃습니다.

상담사의 현란한 기술 때문일까요?

내담자의 간절한 믿음(플라시보)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따뜻한 관계 때문일까요?


핸슨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젊은 시절 자신이 겪어야 했던, 학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회상합니다.



"프로이트가 아니면 틀린 것이다" - 이데올로기의 감옥


핸슨 교수는 박사 과정 시절, 지독한 '정신분석 지상주의'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가 속한 대학원은 학문의 전당이라기보다 차라리 종교 집단(!)에 가까웠습니다.

그곳에서 '치유'란 오직 무의식의 깊은 갈등을 해석해 성격을 뜯어고치는 것뿐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행동주의 기법으로 증상을 빨리 완화해 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다면, 교수들은 그를 경멸했습니다. 또 증상이 호전되어 치료를 그만두겠다는 환자는 "진짜 치유된 게 아니라 '전이 치유(환상)'에 빠진 것"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반대로 행동주의자들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행동의 교정만을 성공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양쪽 진영 모두 자신만이 '유일한 진리'를 쥐고 있다고 믿었던 거죠.



인지 부조화 - 대가(Guru)들을 향한 맹신


젊은 핸슨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더 큰 문제는 소위 '대가'라고 불리는 교수들끼리도 말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오전 수업의 교수가 "이 환자는 A가 문제다"라고 하면, 오후 수업의 교수는 똑같은 환자를 두고 "B가 문제다"라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단했습니다.

진실은 하나여야 하는데, 정답은 여러 개였습니다. 하지만 핸슨은 그 당시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 미래를 이 교육에 걸었고, 교수들이 틀렸을 리 없다는 생각은 내 생존 본능이었다.”


비싼 와인을 따기도 전에 '맛있을 거야'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그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피하기 위해 교수들을 맹목적으로 이상화했습니다. 그것이 그 거대한 모순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반창고”라 비난받던 그들이 치유하고 있었다


졸업 후 전문직 상담사가 된 핸슨은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합니다. 새로운 직장의 동료들은 정신분석을 전혀 모르는 '인본주의 상담가'들이었습니다. 그의 옛 스승들에 따르면, 이들은 환자에게 '반창고'나 붙여주는 엉터리 기술자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본주의 상담을 받은 내담자들은 분명히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정신분석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감염을 치료하는 데 한 의사는 항생제를 쓰고, 다른 의사는 거머리를 쓴다면 둘 다 효과가 있을 순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정반대의 이론이 모두 사람을 살리는가?“


이 모순 앞에서 핸슨은 비로소 인정하게 됩니다. 특정 이론이 정답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요. 대학원 시절 자신을 짓눌렀던 그 거창한 이론과 도그마들이, 사실은 상담의 효과를 설명하는 수많은 퍼즐 조각 중 하나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론을 넘어선 곳에 사람이 있다


제임스 핸슨의 이 솔직한 고백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내 마음을 단번에 고쳐줄 '마법 같은 해결책'이나 '권위 있는 전문가'를 찾습니다. 하지만 영화 <킹스 스피치>의 라이오넬 로그가 그랬듯, 그리고 핸슨 교수가 뒤늦게 깨달았듯, 상담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론의 우월성이 아닙니다.

치유는 상담사가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증명하려 할 때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고통스러운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때 일어납니다.


혹시 지금 마음의 문제로 전문가를 찾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녀)의 학위나 그(녀)가 신봉하는 이론보다는, 이것을 먼저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 사람은 나를 하나의 이론적 사례로 보는가, 아니면 고유한 인간으로 대하는가?”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완벽한 이론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빚어내는 진심 어린 소통의 시간일 겁니다.


“도움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제쳐두고 또 독단적인 유대 관계를 포기하더라도[!], '무엇이 상담을 효과적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 James T. Hansen


[지난 글에서 다뤘던 프랭크와 더불어, 상담이나 치료의 효과를 이끌어 내는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깊은 인상을 주는 저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상담 선생님은 과학자일까요, 신화 제작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