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하고 나서 달라진 세 가지

돈으로 시간을 샀습니다.

by 폭풍속 부푼돛

"반장님~ 단열재 거기 아니고 저기 어버버버..."

그날도 잠꼬대를 했다. 이게 몇 번째인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무언의 화남이 느껴진다.

"미안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했지?"

"오빠, 그냥 전화 끊고 자. 피곤한 거 같은데 무슨 전화야? 잘 자."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리라는 부푼 포부를 가진 건축학도는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에 입사한 나는 건설현장에서 근무를 하였다. 현장은 아침 7시에 시작하기에 기상시간은 5시. 아파트 현장이었기에 오르락내리락. 만보가 무어냐 하루에 5만 보이상은 걸은 듯하다. 그렇게 저녁 6시에 현장이 파하고 2라운드 시작이다. 도면 검토, 물량 산출, 잡무 등을 완료하면 보통 밤 8시. 집으로 돌아와 씻고 누우면 밤 9시.


그때부터 3라운드 시작이다. 바쁜 직장생활 탓에 자주 못 보았던 우리의 연애는 주로 전화로, 그것도 밤에 통화를 즐겼다. 연애 초기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핸드폰을 잡고 살았다. 불타는 핸드폰,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마냥 좋았기에 힘들 줄 몰랐던 그 시절.

하지만 3라운드의 방어전이 거의 매일 이어지니 체력이 고갈 날터. 야밤의 전화통화는 꿈과 생시의 싸움이다. 천근만근의 눈꺼풀과의 싸움이다. 통화 중 잠꼬대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우리의 싸움의 횟수도 늘어났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유명한 카페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던 프러포즈였다. (아내가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만약 본다면 심심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현장에서 고생한 나의 애마 뒷좌석에서 뒹굴던 프러포즈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녀의 손에 끼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행복의 조건이 완벽해졌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행복은커녕 불행의 조건이 점점 완벽해지고 있었다. 연일 야근과 쉼 없는 육아로 나와 아내, 심지어 첫째와 둘째까지 지칠 대로 지쳐갔다. 부부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가정에서의 나는 24시간 편의점의 현금지급기로 전락해버렸다.


'우리 가족은 그냥 이대로 살아가는 것일까.'

현금지급기인 아빠와 그냥 사는 아내, 아빠를 어색해하는 아이들, 그저 그런 가족으로.

둘이 마주 앉아 심각하게 고민했다. 우리가 왜 이지경까지 왔는지, 무엇 때문인지. 그리고 결론에 다다랐다.


"까짓 껏 그냥 때려치워. 돈 좀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되지.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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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돈보다 시간을 선택했다. 이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보다 월급은 훨씬 적지만 시간이 보장이 되는 곳으로. 아내가 먼저 이런 고마운 제안을 해주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내를 리스펙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정 내 서열이 요지부동, 확고해졌다. (아내가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만약 본다면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전 회사에서 이직을 한다고 하자 모두들 축하 반 걱정 반이었다. 아마 축하의 반도 겉으로만 축하고 내심은 걱정이었으리라. 버티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을 토로하는 선배도 있었다. 자신도 그런 시기가 있었는데 버티니 괜찮았다고.

하지만 난 선배의 그 괜찮음에 동의할 수 없었다. 선배의 주말부부, 항상 날이 서있는 성격, 취미 하나 없이 일에 메여 사는 삶을. 난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 어색해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 미안함이 괜찮음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이직을 하고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침 9시 출근에 저녁 6시 퇴근, 빨간 날은 무조근 쉬고, 업무강도도 매우 수월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월급이 반이상으로 줄었다. 이전 회사의 동료들의 염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급여명세서의 숫자가 맞는지 몇 번은 확인한 거 같다. 남들한테 물어보기가 그래서 총무팀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틀림이 없었다. 틀림없이 반 이상 줄어든 월급이었다. 그렇게 난 정신줄을 부여잡으면 저녁 6시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갔다.

"월급 확인했어? 완전 멘붕이다."

"응. 이 돈으로 어떻게 잘 살아봐야지."

아내는 그저 담담했다. 아마도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한 각오라 생각한 것일까. 이런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월급 말고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 아침의 여유를 즐기며 아침햇살을 받으며 출근한다는 것이 이리도 행복할 줄이야. 퇴근 후 저녁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일몰을 감상하며 자전거를 즐긴다는 것이 이리도 행복할 줄이야.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일상이 나에게는 감성을 터뜨려주는 일상이었다. 지금의 너와 내가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시간들. 아니, 어쩌면 이전 회사의 월급의 반으로 우리 가족은 지금 이 시간을 구입했다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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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해진 시간 속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 이런 여유로움은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세계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돈을 통해 많은 걸 얻었다. 하지만 돈을 통해 많을 걸 잃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 인생의 짧지 않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가난을 선택했지만 부자가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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