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처진달팽이>를 좋아하는 이유
말하는 대로, 맘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저의 꿈은요, <월든>의 소로우처럼 사는 거예요. 자급자족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거 같고요. 옆집은 엄마, 뒷집은 누나,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서 같이 살고 싶어요."
그녀와 두 번째 만남, 파주에서 나의 꿈에 대해서 거창하게 얘기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는 '내가 미쳤지.'라고 탄식을 날리는 옛날이야기이다. 그 당시 취업 면접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건축을 선택한 동기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면접관 대신 두번 만난 여자(지금의 아내)에게 면접 아닌 면접을 봤다.
내 인생에 있어서 <월든>은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군대에 있는 도서관 책 정리 작업을 하면서 월든을 알았고, 그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을 제공한 셈이다. 남는 시간에는 책을 끼고 살았고, 독서의 재미를 알 수 있었다.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다.'는 군인의 결핍은 평생 완독 한 책이라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권이 다인 나에게 지속적이고 무한한 독서의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군대 제대 후 현실로 돌아온 나는 내 인생에 책은 없었던 것 마냥 순간의 쾌락을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
"돈으로 시간을 샀습니다."
2016년 사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이런 거창한 결심을 한 이상 무언가 보여주어야만 했다. 돈보다 시간이라는 놈에게 투자한 나는 실천이 필요했다.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의지가 없다면 그냥 돈만 못 버는 가장이 될 거 같았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이 책<독서천재가 된 홍대리>이 독서 입문서래. 옛날에 책 좀 읽었다면서?ㅋㅋ (비웃음) 이제는 시간이 많으니까 한번 읽어봐. "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내가 반신반의하며 추천한 책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단숨에 완독을 하고 다음 책을 찾기 위해 책장을 둘러보았다. 책장에는 군대에서 들고 온 <월든>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월든>의 표지 커버를 열자 다시금 군대 시절 결심했던 인생의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꿈꿔온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는가.'
꿈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지배하자 그냥 이대로 살 수가 없었다. 결심의 순간을 실천으로 옮길 때가 된 것이다.
내가 꿈꾸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월든>의 소로우처럼 <조화로운 삶>의 니어링 부부처럼 자급자족이 필요했다. 텃밭을 가꿀 수 있는 땅이 있는 주택에 살고 싶었다. 이런 얘기를 아내에게 하자 아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식탁 위의 채소가 상추인지 깻잎인지 구분조차 못하는 나였으니까 그 비웃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 꿈을 실현할 만한 마을을 찾았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가장 중요한 집이 없었다.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건축 허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특수한 지역이었고. 꽤 유명한 초등학교가 있었기에 그곳은 항상 입주대기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었다.
'꼭 가고 싶다. 꼭 가고 싶어. 근데 집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젠장'
갈 수 없다는 결핍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동산에 연락처만 남겼지만 기대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빨리 오세요. 계약하려고 했던 분이 갑자기 외국으로 가신다고 하시니까 다른 사람 채가기 전에 얼른 오셔서 계약하세요."
외국을 운운하며 뭔가 뻔한 레퍼토리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집 상태가 괜찮았고 내가 원하는 곳이었다. 짐짓 포기했던 나에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기쁘기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정말 신기하다. 누군가 우리를 돕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나는 자유로운 삶의 시험을 시작했다.
이직을 시작으로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였다. 이직 후 관사에서의 생활, 기존 보증금으로 주택 구입하고 다자녀 청약 당첨. 무엇보다 나 자신과 가족 사이의 관심과 애정은 우리 가족을 변화시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변화는 계속 이어졌다.
운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의 강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 나는 돈으로 시간을 산 사람만이 누릴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 감히 생각한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딱히 뛰어나지도 않고 처지지도 않은 그런 사람. 그저 그런 보통의 인생이라고나 할까? 이런 보통의 인생은 편안함을 주었다. 누구에게 주목받고 싶거나 인정받는 것마저도 부담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살기를 결심한 후 이런 평범함을 추구하는 나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형님, 공무원 경력직으로 뽑는데 이거 한번 해보세요. 사기업, 공기업 경력 있으니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험도 안 봐요."
아는 동생이 메신저를 보내왔다. 공고문을 살펴보니 정말 서류, 면접이 끝이었다.
'혹시나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서류 발표 공고문에 내 응시번호가 있는 게 아닌가?
'오호라 이거 면접만 잘 보면 될 수도 있겠는데?'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는 마음이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자신감은 또다시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이런 간절함은 나랑은 어울리지 않은 감정이었다. 예전 같으면 지금의 상황과 환경을 만족해하며 사회에서 인정받는 공무원을 '그깟 공무원'이라고 치부해버렸을 것이다. 사실 공무원이 된다고 해서 우리 가족에게는 득이 될 것은 전혀 없다. 근무여건이나 업무강도, 경제적인 면도 크게 나아진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랑스럽게 '나 공무원이요' 자랑하고 싶은 옹색한 나의 마음. 그게 나의 진짜 마음이었다.
사회적 인정과 명예를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내 모습은 40년 동안 살면서 내가 만든 가짜의 내 모습이었다.
그렇게 황량한 회색의 마음에 욕망이라는 푸른 씨앗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의 진짜 마음이 통하였을까. 결국 최종합격자에 내 응시번호가 있었다.
또 다시 내 인생의 변화가 도래하였다.
공무원 임용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
마흔이라는 나이의 변화가 부담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는 특별한 경험을 느낀 나로서는 지금 이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육아휴직이 떠올랐다. 공무원 임용 전까지 쉬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가치를 찾고 싶었다. 더불어 아이들과 아내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을 주고 싶었다. 이런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예상했던 한마디를 통 크게 했다.
"까짓것 육아 휴직해버려. 뭐 어떻게 되겠지. 가즈아!"
아직도 아내를 리스펙 하는 마음을 져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꽤나 흔들리기도 했지만. 대신 육아와 집안일을 아빠가 주도적으로 하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이직과 육아휴직은 말하는 대로, 맘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