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살과 너의 10살이 만날 때

by 폭풍속 부푼돛

날씨가 무덥다. 이제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기하 '싸구려 커피'의 가사처럼 방바닥에 발바닥이 쩍 하고 달라붙는다. 첫째와 둘째가 밖에서 열심히 놀다 들어왔다. 땀인지 물이지 모르겠으나 흠뻑 젖었다. 보고 있는 나는 찝찝함을 금할 수 없다.


"얘들아 빨리 씻어~"


내가 먼저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보기만 해도 쩍쩍거리며 달라붙는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찝찝할 텐데 왜 꾸물거리고 있지? 밖에서 열심히 놀고 시원하게 씻으면 얼마나 좋아. 내 딸이지만 정말 이해 할 수가 없다. 내가 씻는 동안에도 뭐가 그리도 신나고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난리다. 웃옷은 다 벗어버리고 거실이고 방이고 온 집안을 헤집는다. 그런 모습을 보니 몸은 시원했으나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빨리 씻으라고! 지저분하게 뭐하는 짓이야!"


결국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아빠 나빠! 아빠는 우리를 이해도 못하고!"

"그깟 웃옷 벗고 뛰는 게 뭐가 그리 잘못했는데!"


둘째까지 가세하며 욕실문을 쾅 닫아버렸다. 발가벗은 몸으로 방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닌 흔적이 너저분하게 남아있다. 거실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 이런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나의 유년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같이 무더운, 여름날 10살 나의 모습이.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우리 집 tv에는 7번, 9번, 11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당시 만화 피구왕 통키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수도권에만 송신하는 서울방송은 400km나 떨어진 부산까지는 전파를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후 4시쯤, tv에 달려있는 안테나를 조금씩 조정하다 보면(이것도 나름 기술이 필요했다) 지지직 거리는 서울방송을 볼 수 있었다. 나름 기술을 가지고 최상의 화질의 서울방송을 세팅한 그때의 성취감과 흐뭇함은 서울과 부산 400km라는 거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날, 학교를 마치고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놀고 들어온 나는 땀인지 물인지 모를 땀범벅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오후 4시. 기다렸다는 듯이 웃통을 벗는다. 그리고 대자로 들어 눕는다. 장판에서 전해지는 차가움을 등짝으로 느낀다. 동시에 땀과 함께 쩍 하고 달라붙는 그 느낌. 이 시원함은 무더운 여름 나기의 나만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통키까지 보고 있으니 이곳이 곧 천국이다. 통키를 보고 부르며 느끼는 여름날의 희열이 10살인 나의 살아가는 낙이었다.


10살의 나, 그 아이의 희열이 너무나 또렷하다. 그때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쩍 하고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나의 소중한 등짝이. 가끔 엄마의 스매싱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등짝이.




피구왕 통키를 흥얼거리며 여름날의 유년시절을 만끽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나왔다.


"아빠 무슨 노래 불러?"

"이빠 어렸을 때 좋아했던 노래야. 한번 들어볼래?"

"뭐야 유치하게"

"아빠는 원래 유치한 거 좋아해"


아직 어린 세 딸을 키우는 아빠는 조금은 아니, 꽤나 유치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딸, 덜렁이. 둘째딸, 목욕 극혐자. 막내딸, 코딱지 매니아. 남의 눈 신경 쓰고 체면이 중요한 40대 아재에게는 용납할 수가 없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습들. 그러다 방바닥에 누워서 통키를 보던 나의 10살 기억이 무심하게 한마디 던진다.


'넌 더 심했잖아. 이눔아~'


10살, 8살, 심지어 5살 아이까지 41살의 기준에 맞춰서 아재처럼 행동하길 바라니, 어찌 내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제는 좀 걷어내자. 이제는 좀 덜어내자. 41이라는 숫자를 10 언저리쯤으로 내려놓는 시도를 해보자. 그런 면에서 내 기억력은 생각보다 꽤 쓸 만하다.


나의 10살과 너의 10살이 만날 때 어디선가 등짝 스매싱이 날아 올 수도 있지만, 나의 10살과 너의 10살이 만날 때 이 노래를 너와 같이 꼭 불러보고 싶다.


"통키 화이팅 피구왕왕왕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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