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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Aug 10. 2021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불편한 고백의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읽습니다.

책을 읽다가 덮어버렸다. 내가 잘못 읽었나? 이게 그 유명한 사피엔스? 이렇게 예민한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나? 그리고 다시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잘못 읽을수도 있으니까. 역시나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뭐라고.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작가를 비판한다는 거 자체가 우습게 볼 수도 있. 작은 감정에 치우쳐 착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큰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작은 것이 아니다. 우습게 볼만한 것도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저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것이 내가 읽고 쓰는 이유이다.




복하게 잘 살고 있는 가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빠는 노역을 위해 강제로 끌려가고 아들은 군대로 강제 징집되었다. 딸은 위안부로 끌려갔으며 엄마는 이름을 바꾸고 평소 쓰는 한글을 쓰지 못했다. 길거리에서는 허리에 칼을 찬 순사가 즉결심판을 자행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실제 겪었던 일본의 만행이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염원을 민족자결주의, 인권이라 지칭하며, 그것들을 서구로부터 온 유산이라고 말한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 살고자하는 욕구, 기본적인 생존권을 제국주의 시대의  지배자가 우매한 피지배자를 교화시킨 거 마냥 단정 짓는 저자의 메시지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시작한 책을 끝낼 수는 없었다.  붉은 얼굴로 끝까지 책을 읽었다.




시적인 인류 역사가 주제인 사피엔스는 두껍고 완독이 어려운 책으로 유명하다. 책 좀 읽는다는 람의 책장 한가운데는 사피엔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뿐  아니라 사회, 경제, 철학 등 왠만한 인문학의 소재를 두루 다루고 있으니 완독이 힘들 만도 하겠다. 그것도 번역서이기 때문에 호흡이 긴 문장을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 하지만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사피엔스를 주제로 인류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꽤나 신선했다. 지구에서 인류의 존재를 '연쇄 살인범'이라 칭하고 '밀이 인류길들였다', '농업혁명은 사기다' 라는 저자의 역사적 관점이 매우 미로웠다. 책 중반부에서는 역사란 인류의 이익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는 관점도 흥미롭다. 결국 역사는 어떠한 인과관계의 연결고리가 아니기에 우리의 미래 역시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과학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인류가 구축한 문명의 진보라는 것이 시대의 복잡한 변수에 의한 우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말이 반갑지만은 않지만, 그것이 인류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 인류의 유한성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작년 2월 창궐하여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코로나 역시, 인류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류사의 변수이다. 동시에 전염병을 정복했다는 인류의 오만함에 그 누군가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는 인류 통합이라는 바퀴로 진보하여왔다. 역사의 수레 바퀴는 자본, 제국, 종교라는 세 가지의 바퀴살에 의해 지탱하여왔다. 결국 인류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종교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룬다. 세 가지의 절묘한 조합으로 문명의 진보를 이루어 현재 우리가 살 고 있는 지금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세계를 바탕으로 인류역사의 전환점 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혁명이 이루어졌다. 과학혁명의 이유에 대해 저자는 매우 인상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과학혁명을 '무지의 혁명이'라고 지칭하였다. 과학혁명의 핵심은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이다. 인류 불변의 진리라고 믿었던 가치가 결코 진리가 아닐 수 도 있을 거라는 성찰, 그것을 인정하는 것, 진리라는 착각 속에 고착되어 있는 가치를 뒤집을 수 있는 행동. 이 세 가지가 서구의 과학혁명을 이루는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세상이 뒤집어지고 뒤집힌 세상에서 우리는 과학이 주는 편의를 만끽하며 지금을 살고 있다. 확실히 과거보다는 과학 문명을 누릴 수 있는 지금이 복해보인다. 하지만 책 말미 저자는 중요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과연 지금이 과거보다 행복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당신은 과거보다 지금이 확실히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 중에 과연 몇명이나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번뿐인 인생 행복하지 않다면 왜 사는 것인가?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것이 아닌가? 만약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봐야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왜 행복하지 않은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의 수레는 행복이라는 철학적 가치의 종착점에 다다른다.(행복 부분이 조금은 뜬금없었지만 후속작 호모데우스를 위한 서사적 마중물이란 느낌이 살짝 들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은 나의 얼굴을 조금은 잦아들게 들었다.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얘기하려는 메시지의 순수함이 불편함의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주었다. 그래도 응어리가 다 풀린건 아니다. 혹시나 인생을 살다가 하라리를 직접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말하고 싶다.  그날은 오늘 미처 쓰지 못하고, 고이고이 접어두었던 불편함을 고백하는 날이  될것이다. 그날을 위해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붉은얼굴 말고, 맑은 얼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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