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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Oct 22. 2021

금요일 아침, 5호선의 사람들

오늘도 폭풍속 부푼돛

천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탄다. 제법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들이 보인다. 집에서 자고 있을 딸들 또래로 보이니, 괜히 안쓰럽기도 하고 반갑다. 어린아이들은 아직도 잠에서 깨지 못한 듯 엄마에게 괜한 투정이다. 조용한 지하철 안이 조금은 번잡스럽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언제나, 어디서나 반갑기 그지없다. 반가움은 괜한 오지랖으로 이어진다.

'지금 지하철이면 엄청 일찍 일어났을 텐데...  엄마 손을 잡고 어디로 가는 걸까? 애들이랑 엄마도 힘들겠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금요일이구나! 할머니 집에 가는 건가?'

그제야 오늘이 금요일 아침이라는 걸 깨닫는다.




금요일 출근시간 분위기는 여느 때의 출근시간과는 좀 다르. 주말을 앞두고 있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평일날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사람들이 간간히 보인다는 점이다. 금요일부터 주말 계획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출근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일 게다. 특히나 5호선은 김포공항으로 가는 노선이다  보니  큰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에 타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공항가는 길>이라는 사랑스러운 노래도 있듯이 여행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을 만끽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나까지 설렌다. 동시에 그 옆에 씹쭈구리한 표정으로 서있는 나의 모습과 참으로 대조가 되니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똑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지만 목적지와 표정이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이다.


그러고 보면 지하철  안 사람들의 모습은 언뜻 비슷한 듯 보이나 꽤나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가방을 메고 현장으로 향하는 사람,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 새벽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거나 운동장으로 향하는 사람, 큰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 잠에서 덜 깬 아이 손을 잡고 (아마도) 친정으로 향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사로 향하는 나 같은 사람들.

사람들의 겉모습을 통해 그들의 목적지를 유추한다는 게 좀 우습긴 하지만 금요일 아침 지하철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목적지는 실히 나에게 좋은 기운을 선사한다. 매일 회사로 향하는 무거운 정적함이 아닌, 여행을 앞둔 즐거운 웃음소리, 할머니 댁으로 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에서 나 또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 아침 지하철이  좋다.

지하철에서도 사람의 목적지에 따라 그 사람의 기분은 물론 옆사람의 기분마저도 달리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도 재밌다. 비록 나의 목적지는 회사이기에 설레지도 않고 즐거운 마음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내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목적지를 향해서 항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 몰아치는 비바람과 파도를 피하기에도 급급한 현실이니 목적지는 언감생심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목적지는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인생의 목적, 삶의 이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방향 없는 항해는 표류이다. 그저 폭풍우안에서 비바람만 그치길 기다리다가, 차오르는 빗물을 퍼 나르다가 결국은 심해로 침몰하는 것이 표류이다. 그래서 목적지의 존재 여부는 생존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단어인 '자유'가 인생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어렴풋이 보이는 저 육지가 자유라는 섬일까? 솔직히 나도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 인생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옛 항해자들은 밤에 빛나는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해서 항로를 결정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폭풍우 속에서 돛을 올리고 어렴풋한 불빛을 '그저' 향한다. 저 불빛이 내가 찾던 목적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아니면 또 돛을 올리면 되는 거니까.

어렴풋불빛을 향한 항해는 목적지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준다. 어렴풋이 알 거도 같다. 내가 그토록 찾던 인생의 이유가 어쩌면 폭풍 속에서도 부풀어있는 돛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거센 비바람에 맞서며 성난 파도를 관통해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가 사는 이유라는 것을.




금요일 아침 지하철 출근길에 아이들과, 캐리어를 끄는 젊은 사람을 보고 돌아 돌아 너무 멀리까지 왔다.  무거운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비록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답을 찾으려고 머릿속에 빠져있는 지끈거림은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나가서 회사로 가는 길, 쌀쌀해진 공기를 으며 마시는 커피 한잔의 기대감도 한 몫한다.


그래서 말인데, 

인생 뭐 있나 싶기고 하다. 커피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짜릿함, 그 짜릿함내가 사는 이유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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