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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Aug 19. 2021

직장인이어서 나는 행운아다.

두 발의 자유 vs 두 손의 자유(feat. 두 눈의 자유)

대학원 재학 시절, 크리스마스이브. 애인도 없고, 약속도 없고. 자취방에서 나와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끼익 부릉 덜덜덜~~~'

시동 소리가 그렇게 경쾌하지는 않다. 그 당시 누나가 근 10년은 타고 나에게 넘겨준 차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이게 어디야. 나의 첫 애마!

"그럼 어디로 가볼까나?"

목적지 없이 악셀을 밟는다. 붕~ 소리와 함께 나의 애마는 어디론가 출발한다. 그렇게 강변북로에 다다랐다. 저기 멀리 경부고속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어? 여기로 가면 경부고속도로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핸들을 바로 꺾어 버렸다. 머라이어 캐리의 <산타크로스 이즈 커밍 투 타운>을 들으면서 알 수 는 환희가 밀려온다. 창문을 열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차가운 크리스마스이브의 공기에 분출시킨다.

"야호~!"

아닌 밤중에 부산으로 향하는 덜덜거리는 고물차에서 퍼지는 괴성은 자유의 환호성이었다.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외치는 '리덤' 못지않은 것이었다.




덜덜거리는 고물차이지만 누나 덕에 20대부터 운전을 했다. 직업의 여건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출퇴근은  자가운전이 필수적이었다. 운전을 좋아하는 나는 자동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집 앞 슈퍼를 가더라도 자동차를 애용했다.

자동차가 주는 매력은 기동성이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내가 예전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랬던 거처럼 치기 어린 마음만 있다면 서울과 부산의 왕복도 하루 만에 가능하다. 이 기동성의 또 다른 이름은 '두 발의 자유'일 것이다. 자동차는 나의 두 발이 되어 나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의 자유이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자유는 꽤나 짜릿했.


이직을 하고 두 발의 자유는 여버렸다. 회사 주차장이 좁아 나까지 주차할 공간이 부족했다. 자동차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할 수밖에 없었. 자유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는 나에게 두 발이 묶여버리니 아쉬움이 꽤 컸다. 하지만 반복되는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유레카!

그곳에서도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자동차에서 느꼈던 크리스마스이브의 드라마틱한 자유는 아니었지만 매일 입에서 읊조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자유였다. 두 발이 아닌 두 손과 두 눈의 자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대학시절, 누구나 그랬듯 나는 시험 치기 전날의 벼락치기에 득도를 했다. 벼락치기의 비결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두 가지가 꽤나 효과적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는 동아리 방에서의 밤샘이 있었다. 이에 못지않은 벼락치기의 또 하나의 비법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지하철에서의 한 시간이었다. 학고를 면하겠다는 절실함으로부터 나오는 집중력은 지하철 안에서 자유로운 두 손과 두 눈과 결합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학고가 무어랴 나는 주위 친구들의 선망이 되었.

"수업도 안 들어오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잘 쳐? 컨닝했냐? 아니면 너 혹시 천재 아니야?"

지하철의 자유는 비록 한때였지만, 둔재를 천재로 둔갑시켰다. 이런 마술 같은 기억은 매일 지하철로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다. 자동차가 주는 두 발의 자유를 넘어,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던 것이다.

대학시절에는 학고를 면하기 위한 절실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자유를 갈망하는 절실함이 있다. 가장이라는 가면에 나의 진짜 모습이 점점 소멸해감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그토록 추구했던 자유라는 가치마저 마음속에서 식어감을 느낀다. 이대로 나는 소멸해 가는 것인가. 지하철에서 주어진 자유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지하철에서 나의 두 손과 두 눈은 깨어있고, 움직였다.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 순간만큼은 잠들고 싶지 않았다. 꺼져가는 자유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발악이자 처절함이 나를 깨운 것이리라.


어둡고 좁디좁은 지하를 관통하는 지하철이라면 자유의 불꽃을 피어오르게 하는 최적의 장소이다. 그런 곳에서 출퇴근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나는 행운아다. 지하철에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인이어서 나는 정말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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