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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Sep 06. 2021

지하철에서 꿀잠보다좋은 것

깨어있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5분만 더~ 5분만 더~'

불혹을 넘겨도 이불속에서의 내적 갈등은 끊이질 않는다.

한쪽은 더 자고 싶은 마음, 다른 한쪽은 일어나야겠다는 마음. 짧디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두고 각 진영에서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격렬한 전투가 한바탕이다. 결국은 자고 싶은 마음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다. 그제야 나는 각성한다.

'! 늦었다!'

레벌떡 일어나 씻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가방을 메고 차에 올라탄다. 출발 시각은 항상 애매하고 도착 시각은 항상 간당간당하다. 단 한 번도 여유가 있었던 적은 없었. 힘차게 뛰면 이번 열차는 탈 수 있을 거 같은데... 차마 뛰지는 못하고 빠른 걸음만 재촉한다.

"띠리리~ 띠리리~"

아니나 다를까. 내려가는 계단에서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그제야 전력질주를 한다.  그것도 전력질주라고 헥헥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플랫폼에 도착한다. 언제나 그렇듯 지하철의 자동문은 항상 내 눈앞에서 닫힌다.


'5분만 더'를 이기지 못한 아침은 항상 분주하고 여유가 없다. 이 놈의 '5분만 더'는 다른 모습으로 지하철에서 나를 기다린다.




출근시간, 나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지하철은 항상 여유롭.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찾아 엉덩이와 등을 밀착시킨다. 시원한 착석감, 약간 추운듯한 서늘함과 여유로움은 그간의 아침시간을 보상해 주는 듯하다. 해도 뜨기 전에 이불속에서 '오분만 더' 싸우고 새벽의 전력 질주로 지친 나에게 지하철은 살포시 얘기한다.

'오늘 너무 일직 일어났으니까 보충 좀 해둬야지. 아니면 오늘 하루를 버티기 힘들 거야. 어서 눈 좀 붙이자.'

자기에 최적화된 자세로 고쳐 잡는다. 그렇게 나의 눈꺼풀과 나의 머리와 마음은 중력의 영의 노예가 되었다. 마침내 '5분만 더'가 전투의 승리자가 되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 참 좋은 장소, 새벽의 지하철 안이다. 앉아있다 보면 졸음을 주체할 수없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밀려오는 졸음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지하철의 관성에 몸을 맡긴다.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기분이 전환되면서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이런 것이 소위 말하는 꿀잠이다.

꿀잠은 앞으로의 15시간을 버티기 위한 자양강장제이다. 오늘 하루도 이 자양강장제를 먹고 잘 버텨야 한다. 버텨야지 살 수 있다.  직장으로 끌고 가는 고단한 몸과 지친 마음,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하철 안에서만이라도 보상을 받고 싶었다.

아빠라는 가면을 벗고 직장인이라는 가면을 벗은 채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지하철이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저 쉬고 었다. 여기에서만큼은 복잡한 머리를 내려놓고 싶었다.  잠은 오지 않지만 애써 눈이라도 감고 있으면 그나마 나을 거 같았. 오늘도 그렇게 지하철 안에서 잠을 청한다. 그러면 꿀잠의 개운함을 또 느낄 수 있겠지. 그래서 언제부턴가 출근시간의 지하철 안에서 목표가 하나 생겼다.


"꿀잠을 자야 한다!"


지하철에서 늘 꿀잠을 자고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어야 한다. 쾌적한 환경에 탄식 한마디 뱉어주고 잠을 청했고 컨디션이 좋아 졸리지 않을 때도 잠을 청했다. 항상 잠을 청했다. 잠에 대한 강박관념은 더 이상 꿀잠을 잘 수 없고 억지 잠을 자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니 자도 자도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 다만 힘든 직장생활이나 육아생활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릴 역이 지났나? 다행히도 20분 정도는 더 잘 수 있겠구나.'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차역을 확인한다. 갑자기 주위 얼굴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직장이라는 전장으로 향하는 전사들이지만 얼굴은 이미 패잔병이다. 희망과 결전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꾸벅거리는 고개는 닭인지 사람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갑자기 뭉클하고 짠하다. 저들도 나도 무엇을 위해 이토록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병든 닭처럼 살아야 하나. 언제쯤 끝이 날까.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난다. 하지만 금세 짠한 마음을 넘어 정신이 번뜩였다. 지금 고개를 떨구면 평생 이렇게 살다 끝날 거 같았다.


' 안 되겠다 뭐라도 하자.'


그 순간 가방 속에 있는 책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  좀 보겠다고 몇 개월 동안이나 가방 속에 방치된 책이었다. 남의 책 마냥 낯선 손길로 조심스럽게 책을 꺼내 들었다. 그 후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나에게 지하철은 최고의 도서관이 되었다. 책을 읽다가 슬그머니 눈꺼풀이 내려오면 글쓰기 어플을 열어 글을 썼다.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졸음은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책 읽기와 글 쓰기는 눈꺼풀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역기를 가뿐히 들어 올리는 최고의 선수들이다. 이들은 어느 꿀잠보다도 상쾌하고 기분 좋은 아침을 열어 준다.


여전히 아침 시간은 힘들다. 가장 정적인 상태에서 동적인 상태로 변하는 전환점이기에 어떤 누구도 몸도 마음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기점에 자신만의 방법이 얹힌다면 나의 새벽 지하철처럼  더 이상 흐릿하고 몽롱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선명함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위한 도전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은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선물로 준다. 감수성을 열어놓고 살펴보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 선물은 내가 그토록 찾던 그 무언가 가 될 수도 있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멋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지하철 안에서 깨어있다. 그리고 오늘도 자유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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