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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Aug 12. 2021

지하철에서 자유를 찾는 법

매일 아침 5시 59분 지하철 프리덤

"집이 어디세요?"

"경기도 광주예요."

"헐~ 완전 대박! 어떻게 출퇴근하세요?"

"지하철 타고 다녀요!"

"아이고 힘드시겠어요. 건투를 빕니다."

상대방의 호기심은 측은함으로 바뀐 듯하다. 괜히 미안하다는 듯 대화를 마치려 한다. 나는 그런 상대방에게 굳이 다가가 말을 잇는다.

"저는 출퇴근할 때 지하철이 너무 좋아요.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거든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 네..."

상대방은 나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당연히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을 만족해하는 나를 이해하기가 힘들게다.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동공에서 'ㅉㅉㅉ'가 느껴지는 측은지심은 용납할 수 없다. 남들이 뭐라 하든 경기도 광주에서 사는 것에 만족하고, 출퇴근을 위한 지하철의 한 시간은 고달픈 직장인에게는 정말 힐링의 시간이다.




새벽 5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마음은 언제나 '5분만 더'를 외친다. '5분만 더'를 두 번 외치자 이내 두뇌는 각성한다. 아차 5시 10분! 부리나케 일어나 양치와 머리를 감고 옷을 입는다. 5시 40분,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요즘같이 날씨가 더운 날에도 자동차 앞유리에 서리가 끼어있다. 와이퍼로 쓱싹 서리를 닦아내고 창문을 열고 지하철역으로 출발. 창밖으로 들어오는 새벽의 산속 공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공기의 상쾌함을 음미할 여유가 없다. 아까 5분만 더를 두 번 외치는 바람에 시간이 애매해졌다. 5시 59분 지하철을 과연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8호선 산성역 환승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플랫폼으로 향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5시 59분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 아싸! 조금 전 조급한 마음이 온 데 간데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 자리가 많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천호역을 거쳐 5호선 서대문역에 도착한다. 7시다. 서대문역에서 부지런히 걸어가면 저기 우울한 회색빛의 회사가 보인다. 7시 10분. 이렇게 나의 폭풍 속 버티기가 시작된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비슷한 모습 아닐까? 저기 멀리 보이는 회사건물에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회색빛 아우라를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비슷한 감정 이리라. 하지만 회사까지 가는데 이용하는 운송수단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버스, 지하철, 승용차를 이용하든 사람, 자전거도 있을 수 있고, 걸어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승용차와 지하철을 이용한다. 승용차 20분, 지하철 한 시간, 걸어서 10분. 총 1시간 30분을 출근 및 퇴근시간으로 할애한다. 승용차로 운전하는 시간도 나쁘지는 않지만, 지하철의 한 시간은 무척이나 특별하다. 나 자신을 감추고 사회적 가면을 두껍게 쓴 직장인에게는, 동시에 세 아이의 가장에게는 지하철의 한 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 지하철의 한 시간. 폭풍 속을 항해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고요는 오롯한 자유의 시간이다. 지하철은 자유를 선사한다. 난 이것을 지하철 프리덤이라 부른다.


지하철 프리덤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아이템이 필요하다.

그 첫 번째가 책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것이야 말로 지하철 프리덤의 백미이다. 현실은 지하를 달리고, 회사를 향하는 지하철안 이지만 책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넓은 세상을 배경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 무한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책은 회사가 아닌 자유로 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날개가 된다. 두 번째는 운동화이다. 운동화가 아니더라도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앉아서 가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나를 위한 빈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발이 편하다면 벽에 살짝 기대는 것도 꽤나 좋아하는 자세이다. 안락하고 편한 자세보다 조금은 불편한 자세가 더 좋을 수 있다. 조금의 불편함이 나를 깨우고, 세상을 깨운다. 발이 불편하다면 조금의 불편함을 시도할 수가 없다. 빈자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지하철 프리덤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음악을 듣기 위한 이어폰이나 글쓰기를 위한 핸드폰(난 핸드폰으로 글쓰기를 선호한다)이 있으면 보다 풍성한 지하철 프리덤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지하철 프리덤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거운 눈꺼풀이다. 특히나 이른 아침, 책을 보고 있으면 중력의 령이 눈꺼풀을 잡아 끌어내린다. 눈꺼풀 무게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나는 애초에 조금은 불편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무거운 눈꺼풀을 극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면 그렇게 긴 시간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 종로구로 출퇴근을 한다고 하면 모두가 놀라곤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놀라워 하지만 결국 공간적인 거리감이 그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경기도 광주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의 그저 그럴 거 같다는 두려움 같은 것 아닐까. 그래도 생각보다는 꽤 가까운데 말이다.

나의 출퇴근에 놀라는 사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모두가 비슷한 출근 루틴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불 속에서 나오는 순간과 회사로 향하는 시간은 힘들다. 출퇴근 시간이 몇시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자체가 고역이다. 그렇다고 일상을 포기할수 없다. 신성한 노동으로 다수의 이익을 위한다는 사명감도 좋겠지만 한달에 한번씩 들어오는 월급을 나는 포기할  없다. 물론 주어진 환경이 개선 가능하다면,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도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델포이 신전 비문에 적혀있는 격언을 상기시켜본다.

'주어진것을 선용하라.'

내게 주어진 것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리라.


일주일 중 5일, 하루 중 3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자유를 위한 가치로운 시간이 될지, 나를 구속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지는 내가 선택하기에 달려있다. 나의 일상을, 나의 인생을 자유롭고 가치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일 아침 5시 59분 지하철에서 먼저 자유를 선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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