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동지는 12월 21일이 동지입니다.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이 있듯이, 밤의 길이가 극한을 찍게 되는 동지는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기준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러한 동지를 두고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시기"라고 하기도 하지요. 비슷한 이유로 민간에서는 양의 기운이 부활한다고도 해서 '작은 설(亞歲)'이라고도 하고요. 이와 관련해서는 주역에서 음력 11월 동지를 상징하는 지뢰복(地雷復)괘를 살펴보면 좋습니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주역의 괘를 통해 1년 12개월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잠깐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 그 원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봅시다. 관심이 없거나 이해하기 귀찮다면 한 문단 건너뛰어서 읽어내려가셔도 무방합니다.
일단 음력 11월 동지를 상징하는 지뢰복괘는 위의 음효(陰爻) 5개와 그 밑에 양효(陽爻) 1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참고로 그림에서 음효는 작은 짝대기 2개(- -)를 가리키고, 양효는 긴 짝대기 1개(ㅡ)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음은 음대로, 양은 양대로 모여있는 괘를 다산 정약용은 '벽괘(辟卦)'라 하여서 나머지 괘의 근원으로 보았습니다. 이제 동지부터 한달이 지날 때마다 차곡차곡 양효가 쌓여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12월에는 위의 음효 4개와 그 밑에 양효로 구성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쭉쭉 양효가 쌓여 올라가다보면 음력 4월에 모든 괘가 양효가 되는 건위천괘까지 찍습니다. 그리고 음력 5월에는 동지의 지뢰복괘와는 음양관계가 역전되는 천풍구괘가 됩니다. 천풍구괘는 위의 양효 5개와 그 밑에 음효 1개로 이루어져서, "일음(一陰)이 시생(始生)"하는 하지를 상징합니다. 여기까지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모르더라도 대략 이러한 느낌으로 1년 12개월을 주역의 괘상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음력 11월 동지를 음이 꽉 찬 가운데에서 양이 처음 생기는 모양의 지뢰복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뢰복(地雷復)'이라는 괘의 이름답게 동짓날은 양의 기운이 다시금 새롭게 '부활(復活)'하는 날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뢰복(地雷復)'의 '복(復)'은 '부활(復活)'에서는 '부(復)'로 읽히기도 하지요. 이는 음이 쌓여있어서 가장 암흑같고 고통받는 시기에 있을 때 그 속에서 양의 기운과도 같은 희망이 샘솟는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의 시인 횔덜린이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또한 자라나리(Wo aber Gefahr ist, wächst/Das Rettende auch)"1라고 그의 시집 <파트모스(Patmos)>에서 이야기한 구절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헤겔이라면 이를 두고 위험이 곧 구원이 되는 대립물의 일치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특별히 올해 동지에 이러한 의미들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험이 사회 전체를 뒤엎은 최악의 시기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다른 한편에서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샘솟는 시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의료, 교육, 언론, 경제, 생태의 문제점이 심각해졌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진단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예전부터 각 분야의 사회적 불평등은 심각해왔고 많은 과학자들이 생태계의 문제점이 이제는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끊임없이 경고해온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들은 원래부터 심각했던 문제였고 팬데믹이 터지면서 크게 부풀려졌을 뿐입니다.올해 들어서는 정말로 인간과 자연과 사회가 한계의 한계까지 다다른 듯합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판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상황이 극에 달할 때를 기회로 삼아 모든 것들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이번 팬데믹 사태를 단순히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약간만 수정하고 적응하는 정도로는 앞으로 어림도 없습니다. 각 분야의 석학들은 예전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해왔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뿌리깊은 재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젝이라는 철학자가 말하듯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길은 없고, 새로운 '일상normal'이 옛 우리 삶의 잔해들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이미 조짐이 선명하게 보이는 새로운 야만에 접어들게 될 터"2입니다. 그동안 견고하고도 보수적인 우리의 시스템은 여태까지 우리를 결코 변화할 수 없도록 옥죄어왔습니다. 그저 두 귀를 막은 채로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정치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외칠 수 있는 연대를 통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팬데믹 동지에 팥죽을 대신해서 여러분들께 전하고픈 이야기입니다.
1 횔덜린,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엔 구원도 따라 자란다」, 『궁핍한 시대의 노래』, 장영태 역, 혜원, 1990
2 슬라보예 지젝 저, 『팬데믹 패닉』, 강우성 역, 북하우스, 2020,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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