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혹설: "사건의 기억이 정신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첫 번째 패러다임은 1895년에서 1905년까지 히스테리에 근거한 무의식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당시에 저술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소위 '유혹설'의 관점을 주장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해서 그것이 정신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기억이 정신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언어철학의 화행 이론(Speech-Act Theory)에 등장하는 '발화 효과(perlocutionary effect)' 개념과 비교해봐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이러한 생각에는 정신이 일종의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다. 『히스테리 연구』의 용어로 하자면, 정신은 다양한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서로 뭉쳐서 공고화(consolidation)되기도 하고, 어떤 특정한 기억을 밀쳐내면서 억압(repression)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억압된 기억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다른 기억들이 서로 스크럼을 짜면서 거부하는 것을 '저항résistence'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배후에 존재하는 모종의 인격적인 의식이 저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머릿속에 축적된 기억이나 표상들이 자기들끼리 알아서 공고화, 억압, 저항 등의 계산(computation)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계산주의(computationalism)' 개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저항의 개념, 인격적인 의식이 저항을 한다는 개념은 좀 더 나중에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억의 억압은 도대체 왜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한 '정동(affect)' 때문이다. 이는 기억이 정신 속에 불러일으킨 정서적인 파장을 말한다. 정동의 원어인 'affect'는 어원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 '타격을 받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유혹설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기억이라고 했다. 그러나 더욱 엄밀하게 말하자면, 증상을 만들어낸 것은 사건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이 만들어낸 정동이다. 즉, 기억이 정신에 정동을 발생시키고, 정신이 그 정동을 감당하지 못할 때 애초의 기억은 트라우마적인 기억이 되는 것이다.
2. 증상 형성의 두 가지 축: 언어학적인 축과 정동의 축
프로이트가 말하는 증상 형성의 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기억, 표상, 관념 등과 같은 표현을 아우르는 지형학적인 관점(언어학적인 축)이고, 다른 하나는 쾌락, 불쾌, 불안, 흥분, 긴장, 에너지, 축적, 방출 등의 표현을 아우르는 정동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동은 양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경제학적인 관점이 되고, 힘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동역학적인 관점이 된다. 이렇게 도출된 세 가지 관점은 프로이트의 모든 저작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기억과 같은 표상은 언제나 정동이 따라다닌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표상이나 기억이 정신에 불쾌한 정동을 만들어낼 때, 정신은 그러한 불쾌한 정동 앞에서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히스테리의 경우에는 기억이 불쾌한 정동을 유발할 때 그 기억을 억압해버린다. 바로 이렇게 기억이 억압되는 과정에서 기억과 정동은 서로 따로 놀게 된다. 즉, 기억은 억압되지만 불쾌한 정동은 그대로 남아서 혼자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정동이 억압된 기억과 연관성이 있는 어떤 다른 표상(증상), 특히 육체의 어떤 표상에 달라붙어버릴 때 히스테리 증상이 발생한다. 이렇게 애초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육체적인 증상으로 옮겨지는 현상을 '전환(conversion)'이라고 한다. 이렇게 전환에 의해 바라생하는 히스테리를 '전환 히스테리'라고 부른다. 우리가 '화병'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일종의 전환 히스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당시 프로이트는 이러한 히스테리를 일종의 신경증의 기본 공식으로 설정해 두고, 나머지 다른 신경증들은 이러한 기본 공식의 변주처럼 풀어나가려 했다. 일단 히스테리는 증상이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강박증에서 주된 증상은 관념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강박증에서는 불쾌감을 주는 사건의 기억을 억압해버리면서 풀려난 정동이 다른 표상의 연쇄들, 표상의 덩어리들, 어떤 생각들이나 행위로 이루어진 의례들 등에 달라붙어버린다. 강박증자들은 이렇게 생각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공포증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불쾌한 정동, 특히 불안감을 발생시킬 때, 공포증은 이 기억을 억누른다는 점에서 히스테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억을 억압해버리면 정동은 돌아다니다가 공포증적인 대상에 달라붙게 된다. 예를 들어, 새라든가 개라든가 광장 등과 같은 어떤 특정한 붙어서 불안감이 어떤 대상에 대한 공포감으로 변형된다는 것이다. 결국 프로이트의 첫 번째 패러다임에서는 히스테리를 모든 이론의 중심에 두어서 공포증과 강박증을 풀어내려 한다. 결론적으로 증상 형성은 표상과 정동이 결합되면서 발생하는 결과 중 하나이고, 두 가지 축이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증상의 양상이 결정되는 것이다.
3. 무의식의 동력에서 무의식의 언어로: 카타르시스 요법에서 자유연상 요법으로
지금까지 설명한 증상 형성의 메커니즘은 『히스테리 연구』 , 『꿈의 해석』,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등을 관통하는 항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축, 즉 무의식의 동력과 무의식의 언어는 이들 저작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무의식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동의 축이 우선시되고 더 부각되었다면, 『히스테리 연구』로 넘어올 때 쯤에는 무의식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언어학적인 축의 비중이 더 커진다. 그리고 『꿈의 해석』을 경유해서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 이르게 되면, 언어학적인 축의 비중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pp.78~79의 '시뇨렐리 보티첼리' 논의 참고)
왜 처음에는 무의식의 동력이 더욱 우선시되었을까? 맹정현에 따르면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만들던 당시의 분위기가 유물론적인 과학주의가 대두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당대 유행하던 과학을 정신과학에 적용시키려는 포부가 「과학적 심리학 초고」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가 더욱 중요하다.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파악하고 고려해야 할 것은 증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증상은 불쾌한 정동때문에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가장 초기 작업들은 바로 증상 뒤에 있는 정동을 추적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분석학은 언어학적인 축의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브로이어의 카타르시스 요법에서 프로이트의 자유연상 요법으로 자연스레 넘어가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정신분석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언어학적인 축이 중요한가? 그에 앞서 일단 왜 자유연상 요법이 중요한가? 맹정현에 따르면, 이러한 자유연상은 표상들이 자연스럽게 꼬리를 이어가면서 펼쳐지도록 생각을 내려놓기 위함이라고 한다. 저항을 뚫어내고 억압된 표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고 표상들이 알아서 저절로 움직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4. 기억의 통시태
그렇다면 왜 언어학적인 축이 중요한가? 즉, 어찌하여 정신분석에서 표상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맹정현은 이와 관련해서 '기억의 통시태'와 '기억의 공시태'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기억의 통시태(diachronie)는 정신분석의 '사후결정론(aprés-coup)'을 설명하는 좋은 개념이다. 사후결정론은 첫 번째 패러다임에서 프로이트가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이자 핵심적인 성과라고도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과학적 심리학 초고」(1896)에 나온 엠마 사례를 들 수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8살의 엠마는 사탕가게를 들렀을 때 사탕가게 주인은 엠마의 성기를 더듬고 압박하는 등 성적인 학대를 했다. 그 당시에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춘기에 접어들고 성에 눈뜨게 될 때, 어릴 적 기억이 성적인 사건으로 '사후 결정'되면서 그것이 불쾌한 정동을 만들어낸 사례다. 이러한 사례로 미루어볼 때, 문제는 행위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5. 기억의 공시태
두 번째로 기억의 공시태(synchronie)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기억들이 특정 기억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연관 관계가 전혀 없는 기억들이 마치 서로 관계가 있는 듯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잘못된 연결(fausse connection)'이라고 한다. 잘못된 연결이란 말 그대로 표상이나 기억이 기만적인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왜 이러한 기만을 하는가? 무언가 숨길 것이 있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에 기억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와 연관이 있는 또 다른 개념으로 '장막 기억(souvenir-écran)' 혹은 '스크린 기억', '차폐 기억'이라고 불리는 개념이 있다. 이것도 기억은 기억인데 어떤 다른 기억을 은폐하거나 위장하기 위한 기억이다. 이것은 1899년에 발표한 「장막 기억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제시된 생각이다. 이 글은 시기적으로 『히스테리 연구』(1895)와 『꿈의 해석』(1900) 사이에 있으면서 후자에 훨씬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장막 기억'과 같은 아이디어는 『꿈의 해석』에서 꿈에 적용되어 '현재몽(réve manifeste)'과 '잠재몽(réve latent)'라는 용어가 나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몽은 우리가 꿈을 꿀 때 겉으로 드러나는 표상들을 의미하고, 잠재몽은 그러한 표상들이 은폐하고 있는 또 다른 표상들(무의식적인 내용물)을 의미한다.
이렇게 프로이트는 기억의 통시태에서 기억의 공시태에 대한 문제로 이동하게 된다. 즉, 기억이 시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는지에서 하나의 공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엮이는지에 대한 문제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부터 무의식을 하나의 공간처럼 규정하는 비유들이 등장하게 된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또 다른 장소(une autre scéne)'라는 식으로 본다. 인간의 정신을 인격체라거나 실체가 아닌 하나의 장소 및 장(field)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굉장히 비인간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자아'라는 용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적 자아라거나 인격적 자아가 아니다. 단지 표상들을 관통하는 어떤 기계적인 원칙 혹은 상징적인 원칙으로 제시되는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 패러다임에서는 이후의 패러다임에서 볼 수 있는 발달론적인 관점이라거나 다소 인격화된 심급들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