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W. R. D. 페어베언: '순수' 대상관계 모델
왜 부모로부터 학대 받은 아동들은 부모에게 충성하고 오히려 동조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데이트 폭력을 당하거나 가정 폭력을 당했는데도 오히려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경우는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페어베언(William Ronald Dodds Fairbairn, 1889~1964)의 대상관계 모델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삶의 거친 상황을 겪어내야만 하는 아동들을 관찰하며 자아의 내적 구조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의 심리학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으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거기에서 크게 한발짝 더 나아가 가장 '순수한' 대상관계 모델을 제시했다. 즉, 페어베언은 쾌락원리와 욕동을 강조한 프로이트의 동기유발 개념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거부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상관계 모델은 훗날 에디스 제이콥슨이나 오토 컨버그 등에 의해 비판적으로 수정된다. 이들은 대상관계와 고전적 본능 모델을 다시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다.
1. 유아의 심리 내적 구조들
페어베언의 대상관계 모델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위 그림에 나온 도식 하나만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페어베언의 심리학을 임상에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그는 자아를 '원초적인 심리적 자기(primary psychic self)', 즉 자체적으로 리비도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단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통합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자아는 세 가지 측면으로 나뉘며, 이 분리된 측면들은 대상의 각기 다른 측면들과 관계를 맺는다. 페어베언은 자아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하부 구조들을 '심리 내적 상황'이라 불렀다. 이러한 페어베언의 자아 모델은 프로이트가 자아는 이드로부터 리비도적 에너지를 공급받는다고 주장한 지형학적 모델과는 상반된 이론이다.
유아의 정상적인 심리적 상황은 이러한 내부 구조들을 수립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 이때 겪는 좌절 경험이 내적 구조들을 개발시키는 데 아주 기초적인 역할을 한다. 유아가 좌절의 경험 없이 완벽하게 안정된 상태를 지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완전한 삶의 조건들이 유아와 엄마 사이의 리비도적 관계를 방해하며, 그것은 유아로 하여금 다양한 방어적 기제를 통해서 반응하도록 자극한다. 아이가 좌절에 반응하는 방식은 공격적이 되거나, 문제가 있는 대상을 내부로 받아들여서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좌절을 겪는 아동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육자는 양가감정을 띤 사람이다. 즉, 양육자는 좋기도 하면서 나쁘고, 만족스러우면서 동시에 불만족스러우면서 동시에 불만족스러운 내적 대상이다. 미성숙한 성격은 좋으면서 동시에 나쁘기도 한 그런 대상을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아이는 견디기 힘든 상황을 완화시키려 몇 단계에 걸쳐 노력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내적 구조들을 형성한다.
정상적인 경우, 아이는 좌절을 주는 외부세계의 그 나쁜 대상들을 가능한 한 거부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기회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이 나쁜 대상(가령 벌주거나 학대하고, 서로 싸우는 나쁜 부모들 같은 경우)을 아무리 많이 거부하고 싶다 하더라도, 아동은 이 나쁜 대상들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동은 부모를 필요로 하고 그들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동을 장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동은 부모를 통제하기 위해(정확히는 통제감을 갖기 위해) 그들을 내면화시켜야 한다. 이때 실제로 억압되는 것은 충동이 아니라 부분대상인 나쁜 대상들, 그리고 이러한 부분대상들과 자아 부분이다. 참고로 이러한 내적 나쁜 대상들 및 그것과 연관된 자아의 부분들은 심리 내적 구조이지, 중심적 자아(central ego)인 자아 구조(ego structure)는 아니다. (여기서 '중심적 자아'는 페어베언의 용어다.)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선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신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죄인인 것이 더 낫다"
(Fairbairn, 1943/1954, p.66)
2. 내적 대상의 내사와 자아의 분할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자아의 세 가지 측면'을 내적 대상의 내사와 자아의 분할 기제를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맨 처음에 나오는 교과서의 그림을 참고하며 읽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유아는 엄마를 2개의 부분대상으로 분할한다. 만족을 주는 부분대상인 좋은 어머니와 관계를 맺는 '중심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 이후로 유아는 상황 속에서 존재하는 문제적 요소들을 자신만의 내부 현실로 옮기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렇게 내부 현실로 옮기면 조금 더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페어베언은 클라인과는 달리 나쁘거나 불만족스러운 대상만이 내면화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외부 현실에서도 유아가 활용 가능한 그런 좋은 대상을 구태여 내면화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클라인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한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뒷 내용은 페어베언의 독자적인 주장들이 나오기 때문에 조금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면화의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불만족스러운 대상은 여전히 실제로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내적 대상은 다시 두 가지 모습으로 분할된다. 그것을 각각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하는 대상'으로 부른다. 흥분시키는 대상은 희망이나 기대감만 주고 만족은 주지 않는 '유혹하는 어머니'를 가리킨다. 그리고 거절하는 대상은 '만족을 주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어머니'를 가리킨다. 그리고 유아는 적극적인 억압을 통해 이러한 2개의 나쁜 대상을 무의식으로 억압한다. 이러한 2개의 내적 대상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그 역시 분할되고 억압된 자아의 부분들이다. 즉 하나는 리비도적 자아(libidinal ego)이고, 또 하나는 내적 파괴자(internal saboteur)라 불리기도 하는 반리비도적 자아(antilibidinal ego)다. 리비도적 자아는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자아로서, 흥분시키는 대상에게 끌린다. 그리고 내적 파괴자는 프로이트의 초자아와 비슷한 역할을 하며, 특히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는 자기의 부분, 즉 리비도적 자아에 대해 공격적이고 적대적이다.
이러한 모델을 볼 때, 아동은 자신이 나쁘게 됨으로써 대상이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나쁨이라는 짐을 자신이 직접 짊어진다. 이것을 통해 아동은 대상이 나쁜 것이 아님을 알리려 노력한다(Fairbairn, 1943/1954c, p.65). 페어베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이러한 유아의 심리기제를 짧고 굵게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선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신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죄인인 것이 더 낫다"(Fairbairn, 1943/1954, p.66) 아이는 환경을 좋은 대상으로 구성함으로써 외부적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나쁜 대상을 내면화시키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안전성을 희생하기까지 한다. 그런 까닭에 자아는 내적 박해자의 처분에 매달리게 되고 아동은 이에 대항하여 방어벽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자아는 방어와 억압의 방법으로 나쁜 내적 대상을 무의식 속으로 추방한다. 그러나 내적으로 억압된 나쁜 대상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나쁜 행동을 하도록 만들거나 또는 자기에 대하여 나쁜 감정을 유발시킨다.
이러한 과정에 관한 아주 극단적인 예는 신체적 폭력이나 성적 학대의 희생자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신체적 혹은 성적 학대를 받은 아동은 종종 자기 자신에 대하여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면서도 자신을 학대한 부모에 대해 이상화된 감정을 유지하려 든다. 자신은 나쁜 사람이고, 학대자는 악한 일을 할 리 없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동은 마음속으로 자신은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존재이고, 따라서 자신이 학대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아동은 누군가라도 — 설령 그것이 나쁜 대상일지라도 — 옆에 두어야만 했다. 그는 대상 없이(objectless) 버려진 상태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해자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도 나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대상이라도 포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 쉽기 때문에 다양한 관계에서 희생자가 되기 쉽다.
3. 발달 단계와 대상관계 - 위니컷의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패스. 자세한 건 위니컷 파트에서 보거나 책을 직접 읽으시길. (절대적 의존, 상대적 의존, 독립)
4. 분석적 치료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해서 치료를 해야 하는가? 그에 앞서서 페어베언은 치료는 다른 사람들과 직접적이고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치료의 목적은 무의식으로부터 나쁜 대상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자는 환자가 나쁜 대상들로부터 해방되도록 돕기 위하여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환자에 대해 충분히 좋은 대상이 되어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에 대해 조심스러워야 하고, 죄책감을 강화시키는 것을 피해야 하며, 또한 환자의 초자아(반리비도적 자아 또는 내적 파괴자)를 편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죄책감은 저항을 강화시키고, 나쁜 대상을 계속적으로 억압시켜 놓기 때문이다. 환자가 저항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쁜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대상을 해방시켜 놓으면 환자의 세계는 나쁜 세계 또는 '자신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끔찍스러운 악마적인 사람들로 가득 찬'(Fairbairn, 1943/1954c, p.69) 환경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페어베언(1941/1954d, p.39)은 분열적(schizoid) 환자들을 구멍으로부터 기어나와 바깥 대상들의 세계를 엿본 다음에 다시금 안전한 구멍으로 황급히 되돌아가는, 소심한 쥐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이러한 태도는 유아적 의존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분리불안과 연관되어 있다. 외적 대상들과의 감정적인 관계에 실패하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대체만족 행위가 행해진다. 이러한 대체만족은 내면화된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게 된다. 외부세계에 있는 대상들과의 안전하며 만족스러운 관계에 몰입하기보다는 내면화된 대상들과의 관계에 몰입한다. 특히 자위행위, 피학증, 가학증 등이 이러한 대리만족의 일종이다.
억압과 죄책감의 방어벽이 무너지면 이런 나쁜 대상들의 고통스러운 일부분이 되돌아오게 된다. 이처럼 억압된 것이 되돌아올 때, 그것은 대개 많은 증상 뒤에 숨어서 온다. 이러한 나쁜 대상들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억압의 힘을 벗어날 때 어떤 특정한 상황을 매우 무서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례로, 환자가 한때는 억압과 내면화를 통해 처리했떤 나쁜 대상들과 이제 다시 맞닥뜨려야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어떤 외상적 상황이 이러한 나쁜 대상들을 무의식으로부터 풀려나게 할 수도 있다. (버림받는 경험, 괴물에 의해 공격당하는 꿈 등)
5. 아쉬운 점과 공헌
페어베언은 클라인과 마찬가지로 모든 발달을 매우 초기의 짧은 시기로 압축시켰다.(Kernberg, 1980, p.82) 그는 다시 한 번 클라인과 마찬가지로, 이때 일어나는 대상표상들과 자기표상 사이의 구별을 간과하였다.(Kernberg, 1980, p.82) 페어베언은 이 초기의 자아를 온전하며 미분화된 것으로 보았다. 에디스 제이콥슨은 이후 이 문제와 계속 씨름한 끝에 한 해답을 내놓게 되었다. 그 결과 심리를 세 구조로 설명하는 모델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초기의 발달과 분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세우게 되었다. (제7장 참조) 페어베언의 연구는 초기의 경험을 잘 묘사해 주었지만 그것들을 일관성 있게 개념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통합적 모델을 제시하는 데에는 부족했다.
페어베언은 초기의 갈등에 대해 아동이 주관적으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서술할 수 있었다. 그는 클라인이 발견한 제멋대로 움직이는 다양한 내적 자아들과 대상들을 정리할 수 있는 하나의 구조적 틀을 제시함으로써 클라인의 개혁적인 노력들을 진보시켰다.(Kernberg, 1980, p.83) 그리고 그의 가장 큰 공헌은 '자기'가 비인격적 본능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대상관계들 속에서 나타나며, 이런 과정이 매우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는 것을 규명하려고 노력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