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구속과 영장실질심사를 설명하는 글에서, ‘구속’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는 이벤트인지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요 앞에 게시해 두었으니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는 것을 권해드리는데, 일단 기억을 환기하는 차원에서만 살펴본다면 ‘구속’이라는 것은 스트레스 지수상 ‘가족 구성원의 죽음’과 동일한 점수로 조사될 정도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 제4위에 랭크되어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구속'을 신중히 하려고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의 요건 충족여부를 엄격히 따져 구속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마련해 두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취지가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영장청구가 받아들여져 구속으로 이어지는 실태를 보고 드린 바 있었는데요
다시 생각해도 ‘구속’처럼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처럼 당사자나 그 가족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고, 재판이라도 빨리 진행되어 가부간 에 뭔가 결론이 났으면 하고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삶을 살아가는 실정인데, 그럼에도 재판은 한 달에 한 번씩만 열리고 그나마도 더디게 진행됩니다.
구치소에 수용되면서 바뀐 환경은 수용자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가정은 극도의 고통에 빠져있게 되며 삶의 희망은 점차 사라지는데, 그래서 그런지 구속된 분이 써서 내보내는 편지를 읽어 보면 마치 유서(遺書)와도 같은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는 구속된 사람을 다시 내보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석(保釋)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보석제도는 구속된 피고인에 대하여 그 재판이 확정되기 전이라면 일정한 금액의 보증금 납부를 조건으로 구속의 집행을 정지함으로써 구속된 피고인을 석방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규정만 읽어보면 보석(保釋)으로 석방된다는 것이 매우 쉬울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적혀있냐면 피고인이 보석을 청구하면 원칙적으로 석방해 줘라 다만 다음의 예외에 해당되면 아니다고 하여 ‘원칙적으로 석방, 예외적으로 구속유지’라는 파격적 입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뜬 마음으로 보석이 안 되는 예외적 사유라는 것을 보면 이렇습니다.
1.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때
2. 피고인이 누범에 해당하거나 상습범인 죄를 범한 때
3. 피고인이 죄증을 인멸하거나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
4.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
5. 피고인의 주거가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피고인이 피해자, 당해 사건의 재판에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 또는 그 친족의 생명·신체나 재산에 해를 가하거나 가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
이렇게 6가지를 적고 있습니다.
얼핏 사람을 살해한 사람 정도의 중죄인이나 계속 감옥에 들락거리는 사람만 아니라면 원칙적 석방을 규정하고 있는 취지에 따라 보석으로 금방 석방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으시면 애초 피고인이 왜 구속되었는지 그 사유를 아셔야 합니다. 앞서 구속과 영장실질심사를 다룬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다시 알려드리는 우리나라의 구속사유는 이렇습니다.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거나, 도망할 염려 중 하나라도 있다면 구속영장이 발부됩니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사람들 중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석방해 준다는 것이 바로 보석제도였는데, 눈치가 빠른 분들은 알아차리셨겠지만, 위 보석의 예외사유 중에서 3번과 4번, 5번은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이유와 동일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씀드려 구속된 사람은 구속할 때의 이유(주거부정, 증거인멸우려, 도주우려)가 동시에 보석청구의 예외사유가 되기 때문에 애초에 석방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진국인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법 제도가 이렇게 되어 있다니 조금 허무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보석청구로 석방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야 할 것 같은데 또 그것도 아닙니다. 정확한 통계라는 것이 확인되지 않아 몇 명이 청구해서 그중 몇 명의 보석청구가 인용되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지만, 2018년 기준으로는 구속기소된 피고인 중 3.6%의 피고인에게 보석허가청구가 인용되었다고 합니다(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범죄예방정책 웹진)
그럼 이렇게 보석청구가 인용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재판이라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하나의 절차이고 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범죄 후 정상 역시 계속 변하게 됩니다. 일단 구속되어 수사나 재판을 받게 되면서 흔들릴 수 없는 증거가 이미 확보되었는데 심리가 너무 길어질 것만 같다거나,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모든 피해를 완전히 배상하여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면, 또는 건강상, 직업상, 가정상황 상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형사절차를 팽개치고 도주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를 재판부에 보여 보석허가를 얻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2020년 8월 5일부터 전자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피고인에게 보석을 허가하는 ‘전자보석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전자보석제도는 피고인에게 전자장치(일종의 전자팔찌인데 스마트폰 시계와 똑같이 생겨서 위화감이 없어 보입니다)를 부착시키고 보호관찰관의 관리를 통해 보석조건의 이행여부를 감독하겠다는 것인데 아주 좋은 발상이자 제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위 전자보석제도도 위 보석예외사유를 공유하는 제도이므로, 이것의 실효성 여부는 여전히 법관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구속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보석허가율은 아까 보신 바와 같이 2018년 기준 불과 3.6%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 영국과 같은 주요 선진국이 30~40%의 보석청구 인용률을 보이고 있음(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범죄예방정책 웹진)을 고려하면 낮아도 너무 낮은 수준이라서, 이들 선진국과 동일한 무죄추정원칙에 서 있는 형사사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으로서 우리나라의 ‘보석청구제도’는 하나의 시스템이 아니라, 법관이 하사(下賜)하는 하나의 은혜(恩惠)와 은전(恩典)으로만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이라도 보석제도의 원래 취지에 맞도록 제도를 운영해야 합니다.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what is right."
“옳은 일을 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다”
-Martin Luther King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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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 22. 이글의 모든 저작권은 전상민 변호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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