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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 lee Feb 12. 2019

"변호사 될 수 없어 증인 됐다"는 소녀가 우릴 울린다

영화 <증인>이 그린 작은 세상... 노력하는 어른은 세상에 있을까

잠깐의 한파가 있었던 최근 어느 아침의 일이다. 외투 속으로 움츠리며 걷고 있는 와중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만 해맑은 표정으로 골목 이곳저곳을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엄마로 보이는 이의 "조심히 다니라"는 한 마디가 귀에 들릴 찰나, 그 아이는 쏜살같이 내게 다가와 팔을 툭툭 치며 물었다.

"플러스 마트, 플러스 마트 어딨어요?"

말투와 행동에서 직감했다. 자폐가 있는 아이였다. 최대한 당황하지 않고 무심한 듯 손가락으로 골목 끝을 가리키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와요"라고 답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는 그대로 뛰어가다 내 앞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같은 질문을 던졌다. "플러스 마트가 어디에요?"라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골목길을 돌아 나와 그 마트를 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출퇴근 길에 종종 들렀던 동네 마트 이름이 플러스 마트였구나.'

부끄러워하는 어른 

영화 <증인> 속 순호(정우성)는 자신이 맡은 중요한 재판 증인석에 자폐가 있는 아이 지우(김향기)를 세워야 했다. 산만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워 보이는 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영화 초중반까지 순호는 갖은 노력을 불사한다. 노인 사망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가정부(염혜란) 변호에 나선 순호는 그 가정부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를 법정에서 증명하고 싶었던 것.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지우는 영화에서 내내 가정부의 말 일부를 읊거나 당시 순간에 대해 꽤 자세히 묘사한다. 그의 진술은 구체적이었고, 일관됐고 심지어 수사 과정에 결정적 증거가 될 내용들도 있었지만 1심 재판부와 순호 등 다수의 어른들은 지우가 갖고 있는 자폐에 대한 편견으로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증인>은 크게 보면 지우가 겪어왔고, 겪고 있는 사회적 편견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순호의 관점을 참고하면 우리 사회 어른들의 민낯을 찌르고 있는 영화기도 하다. 
   


▲영화 <증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순호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에서 활동했다가 생활고로 대형 로펌, 그것도 대형 기업과 권력자들의 끄나풀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곳과 손잡았다는 설정을 주목하자. 십중팔구 순호의 과거와 지금 상황을 알고 있는 '어른'이라면 그의 선택을 인정하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거나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인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순호 주변에 영화는 인위적으로 보일지라도 끊임없이 그에게 알게 모르게 혹은 때론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들을 배치했다. 대학교 동기이자 함께 민변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그 신념을 지키고 있는 수인(송윤아)은 직접적으로 순호를 질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파키슨병을 앓고 있는 순호의 아버지(박근형)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내심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곧 <증인>이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혹은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장애와 편견에 대해

직간접적인 압박과 비판에 순호 내면엔 갈등과 고뇌가 쌓여 간다. 영화는 이 과정을 꽤 밀도 있게 묘사했다. 비록 현실성을 따지자면 꽤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이지만 적어도 순호는 자신의 선택을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그렇기에 영화 말미 지우가 순호에게 던지는 결정적인 질문에 무너질 수 있었던 것. 

등장인물 설정엔 일종의 판타지를 담았다면 사건 구성과 배경은 반대로 현실 반영에 신경 쓴 모양새다. 앞서 언급한 대형 로펌은 그 사무실이 광화문이라는 설정, 영화에서 이들이 맡은 여러 사건 등을 미뤄보아 우리가 알고 있는 '김앤장'임을 유추할 수 있다. 영화 초반 순호가 세종대로 횡단 보도를 건너 향하는 곳이 바로 현재의 김앤장 사무실이 있는 쪽이기도 하다. 

또한 순호가 법정에서 지우를 언급하며 뱉는 표현이나 여러 인물이 장애에 대해 설명하는 태도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다. '장애아와 정상인', '일반인과 장애인'이라고 구분 짓는 행위를 비롯해 지우를 대하는 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그렇다. 
   


▲영화 <증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지우가 특수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설정 역시 활발하게 토론해야 할 지점이다. 비장애인과 구분된 시설에 장애인을 모아서 따로 교육하는 게 맞는지 여부는 그 효용성과는 별개로 또 다른 차별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지우의 꿈은 변호사였다. 영화에서 "변호사가 되기 힘들기에 증인이 되려 한다"는 말이 그래서 더 아프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영화에서 내놓은 결말이 아주 적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증인>은 극중 순호의 "(좋은 어른이 돼 보려고) 노력할게"라는 대사처럼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거리를 좁혀보려는 좋은 시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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