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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 lee Feb 21. 2019

'엄복동'의 과한 상상력, 진짜 문제는 국뽕이 아니었다

<자전차왕 엄복동> 실존 인물에 대한 해석 오류, 무리수로 보여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포스터.ⓒ 샐트리온엔터테인먼트


 
"블록버스터, 스포츠영화, 로드무비, 나아가 로맨스물의 정서를 담으려 했다." 

지난 19일 언론에 선 공개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아래 <엄복동>)을 연출한 김유성 감독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영화엔 일제강점기 자전차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엄복동(정지훈)이 일련의 고난과 고통을 겪다가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깡촌 출신 가난한 서민의 아들, 일자무식이지만 무던하게 훈련은 받는 모습, 주인공을 시기하던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 모습 등은 감독이 언급한 장르 영화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설정이 맞다. <엄복동>은 일반적인 흥행 공식에 충실해지려 했고, 사건 전개와 인물도 그에 맞춰 성장해 가는 구조다.  

영리함과 게으름 사이

설정과 주제 의식만 놓고 보면 <엄복동>은 매우 착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야기 초반 엄복동에게 사기를 치다가 이후 엄복동과 함께 자전차 선수가 되는 이홍대(이시언)나 무장 독립운동을 주장하던 애국단과 달리 자전차 경주로 국민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일미상회 사장 황재호(이범수), 애국단 단원으로 무장 투쟁을 하던 이형신(강소라) 등의 캐릭터 또한 영화의 주제 의식을 위해 마련된 존재처럼 초반부터 결말까지 기능한다.

여기에 <엄복동>의 첫 번째 문제점이 있다. 착한 엄복동, 그리고 그의 주변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다. 물론 이홍대의 경우 사기꾼에서 엄복동의 절친한 동료가 되긴 하지만 이 역시 입체적이라기보단 앞서 설명한 듯 애국심 고취와 휴머니즘을 전하기 위해 설정된 틀 안에서의 변화로 느껴질 정도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군, 일본 제국주의 앞잡이는 모두 악당이라 규정하고 엄복동과 그를 위시한 여타 민중을 선한 존재로 구분해 놓았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당연히 이런 구분에 대한 설득력을 높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런 이분법으로 인해 어떤 캐릭터에서도 인간성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 이야기로선 꽤 영리한 설정이겠지만 영화적으로는 매우 게으르고 나태한 도식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만듦새 면에서 약점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제작 단계에서 김유성 감독과 제작사 간 이견이 있어 감독이 하차했었고, <슈퍼스타 감사용> 등을 연출한 김종현 감독이 '연출 자문'이라는 낯선 직책을 맡았다. 우여곡절 끝에 김유성 감독이 복귀했지만 이미 상당 기간 촬영이 진행된 터였다.

물론 이런 갈등과정은 큰 규모의 상업영화에서 종종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언론시사회에서 공개된 결과물에서 드러난 영화적 완성도는 그런 갈등과 불협화음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심증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진정성에 대해

어설픈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 효과에 대해 언론시사회 당시 주최 측은 "아직 작업이 덜 끝났다"고 설명한 바 있다. 후반 작업이 보완되면 이런 약점은 극복되겠지만 휴머니즘이 조각난 캐릭터들이 과연 어떤 감동 혹은 감흥을 줄지는 미지수다.

영화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에 맞춰 <엄복동> 역시 민족의식과 애국심에 호소하려는 혹은 그에 발맞추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국뽕'이라며 비난하는 모양새지만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과 사건을 조명한 작품들도 대부분 그런 민족의식과 애국 감수성을 건드려 왔다. 

관건은 진정성이다. 만듦새나 특수 효과가 서투를지라도 영화가 그린 인물과 사건, 주제의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관객들 역시 납득하며 기꺼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미덕에서 <엄복동>은 꽤 거리가 멀어 보인다. 후반부 자막을 통해 영화는 엄복동의 승리와 행적이 이후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한다. 정확히는 3.1운동, 임시 정부 수립의 근간이 된 민족정신에 영향을 줬다는 식이다. 당시 신문 기사로 알 수 있듯 엄복동의 승리와 사람들의 환호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그의 존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총칼에 스러져 간 3.1운동 희생자에게까지 이어 보려는 시도는 여러 면에서 무리수로 느껴진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애국단 단원들이 경성 일대를 활보하면서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설정 역시 다분히 과장이다. 물론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애국단원 김상옥이 (기록상) 거의 유일하게 경성 한복판에서 일본군과 거친 총격전을 벌이긴 했다. <엄복동>에선 김형신 뿐 아니라 몇몇 애국단원이 도심에서 꽤 자유롭게 총기를 사용하는데 여러 무장 독립 단체의 모습을 한데 섞으려 한 건 이해하겠지만 이 역시 다소 무리하게 다가온다.

엄복동은 뛰어난 자전차 선수였지만 역사적으로 항일 투쟁과 민족의식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불분명 한 인물이다. 오히려 자전거 절도, 장물죄로 서대문형무소에서 투옥한 전력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니다. 해방 후에도 자전거를 절도하다 기소유예를 받기도 한 기록도 있다. 일제강점기 자전차 한 대 값이 쌀 20여 가마니와 맞먹었다는 당시 신문 기사를 미루어 보면 자전거 절도 자체가 가볍게 볼 행동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2003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감독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가 이후 프리프로덕션(사전 제작 단계)에서 알았다고 말했다. 진정성을 담고자 했다면 조금 더 해당 인물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 줄 평 : 만듦새보다 더 아쉬웠던 진정성
평점 : ★★(2/5)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관련 정보


제작 : 이범수
감독 : 김유성
출연 : 정지훈, 강소라, 김희원, 고창석, 이시언, 민효린, 이범수
제작 및 배급 :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 : 117분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9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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