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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 lee Nov 21. 2021

<싱 스트리트>, 거리로 나온 아이들

[ 영화 같은 내 새끼 #1 ]

유년시절 내 기억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침을 맞은 방안 풍경이다. 8평 남짓 단칸방을 전세로 얻은 내 부모님은 일찌감치 일터로 나간 상태였고, 아마도 난 아직 바닥에 남아 있는 온기를 못내 아쉬워하며 손으로 만지작거렸던 것 같다. 아침밥과 반찬이 놓여 있는 작은 밥상은 상보로 덮여 있었고, 이미 집 밖으로 뛰쳐나간 동생이 동네 친구들과 한바탕 노는 소리가 마치 햇살처럼 창틈으로 새어들어오곤 했다.


아침을 일찍 밝힌 부모의 빈 자리는 친구들로 채워졌다. 이젠 휘황찬란한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선 과거 한남 아파트에 살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왜 그 집 바퀴벌레는 손톱만하고 우리집 바퀴벌레는 어른 검지만한가’를 잠시 생각하다 함께 안성탕면을 끓여 먹었다. 우리집에서 전속력으로 내달리면 5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친구 네에 가선 프로야구를 보거나, AKFN 채널을 틀어놓고 되지도 않는 우리만의 ‘더빙 놀이’를 하며 낄낄거렸던 것 같다.


골목에서 테니스공 야구를 하다 이웃집 유리창을 몇 뻔 깨 먹거나, 동네마다 있다는 ‘호랑이 할매’의 불호령과 물벼락을 등 뒤로 맞으며 내달리거나, 마찬가지로 어느 동네마다 있다는 ‘바우 형’(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동네 형) 주변을 맴돌며 잔뜩 겁을 집어먹은 눈을 한 채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는 게 일상이었다.


서울 한남동 달농네를 빼곡하게 채운 어른들은 종종 큰소리를 냈다. ‘죽네 사네’, ‘지랄 염병’ 욕지기가 들리다 보면 십중팔구 뭔가 깨지거나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 어른 중 상당수는 내 친구의 부모였고, 내 부모 또한 기억에 크고 작은 싸움을 했는데 모든 싸움이 끝나고 찾아오는 적막에서 묘한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나도, 친구도 어른들의 모든 걸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부모의 균열과 격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아침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뛰어놀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일이 벌어진 직후 더욱 최선을 다해 뛰어놀았던 것 같다. 크고 작은 부부싸움, 이혼과 가정 폭력, 알코올 중독이 어른들 세계의 어두움이라면 의도치 않게 우린 유년의 활기로 그것에 맞서듯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안부를 물었다.


영화 <싱 스트리트>의 한 장면 @이수C&E

수년 전, 영화 <싱 스트리트>를 처음 접했을 때 눈이 시큰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다소 놀랐던 적이 있다. <원스> <비긴 어게인> 등으로 한국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존 카니 감독이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10대 소년 소녀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1970, 80년대 록밴드에 대한 헌사인 줄로만 알았건만 유독 이 영화의 몇몇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코를 훌쩍이게 된다.


배경은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 영국 본토와 달리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곳에서 주인공 코너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문제 학생들로 가득한 한 카톨릭계 사립학교로 전학하게 되고, 마음이 맞는 또래 친구들을 하나둘씩 모으며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여느 성장 영화처럼 <싱 스트리트>도 주인공이 여러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이 담겨 있다. 코너는 교문 건너편에 종종 서 있던 라피나를 발견한 뒤 첫눈에 반해 밴드를 시작했지만, 좀처럼 라피나의 속마음은 알 길이 없다. 그러다 학교 문제아 베리에게 두둘겨 맞거나, 카톨릭 사제복을 입은 교장 선생님에게 부당한 체벌을 당하고 억압당하는 일상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코너는 꿋꿋하다. 여느 성장 영화라면 이런 장면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 우울감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대수롭지 않게 학교 구석구석을 돌며 밴드 멤버를 모집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모든 악기를 연주할 줄 안다는 에이먼, 키보드에 재능이 있는 잉기, 게이라고 놀림 받는 래리와 게리를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로 참여하며 비로소 ‘sing street’ 밴드가 완성된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들의 세계가 전부인 10대 시절, 왕따와 놀림, 학원 폭력은 치명적이다. 록 밴드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겐 일종의 탈출구처럼 보이는데 매번 눈물이 나는 지점이 바로 학교 강당 연주 장면이다. 코너가 멤버들에게 <백 투 더 퓨처> 주인공이 학교 프롬(Prom, 졸업식 행사)에서 블루스록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을 언급하며, 학교 강당에서 공연을 준비하자고 제안하는데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자신의 뮤즈인 라피나를 무대에 세울 생각이었는데 정작 그녀는 리허설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설픈 리허설 중 코너의 눈엔 수많은 학생들이 싱 스트리트에 열광하며 춤추고, 이들의 가족과 심지어 못돼먹은 교장 선생님마저 흥에 겨워 덤블링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마침내 라피나도 강당 문을 열고 들어오며 환하게 웃는다.


모든 게 코너의 상상인 해당 장면에서 그렇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그 감정의 정체는 뭘까. 곱씹어 보면 엉망진창인 현실을 대하는 10대 또래들의 제법 성숙한 태도 때문인 것 같다. ‘쿨함’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이들의 자세는 마치 그 현실을 수용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음악을 즐기는 걸로 보이지만, 누구보다 예민하고 사랑이 필요한 시기를 격렬하게 온몸으로 헤쳐나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유년 시절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외로움, 부모의 부재로 인한 어떤 상실감. 그때 나와 내 친구들은 이상하게도 꿀렁이던 마음의 진동을 놀이와 야구로, 게임으로 애써 풀거나 누르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노래 가사를 쓰던 코너는 멤버들에게 ‘행복한 슬픔’이라는 말을 꺼낸다. 형용모순인 이 말에 친구들은 무슨 말이냐며 타박하지만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에 이내 수긍한다. 다툼이 끝이 없던 코너의 부모,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라피나의 아빠와 그 충격에 조울증을 앓는 라피나의 엄마, 커버 밴드를 하며 전국을 떠돌다 바람난 남편을 뒤로 하고 홀로 뒷바라지 해 온 에이먼의 엄마, 잔심부름을 시키며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는 베리의 아빠. 나와 내 친구의 부모 또한 그런 어두움을 품고 있었다.


생업과 현실을 핑계삼아 아이들과 그들의 세계를 돌보지 않던 어른들은 계속 밖에서 겉돌았고, 그럴수록 아이들은 서로 뭉치며 단단해진다. 기타 연주에 뛰어난 재능이 있던 코너의 형은 부모의 억압에 모든 꿈을 포기한 채 마약 중독자가 됐지만, 코너의 꿈을 누구보다 지지하며 영화 말미 라피나와 함께 더블린을 벗어나도록 큰 도움을 준다. 라피나와 코너는 한 손에 뮤직비디오 테이프와 자신들이 만든 노래가 담긴 데모 테이프를 움켜쥔 채 직접 계약을 따내겠다며 호기롭게 바다로 작은 보트를 띄운다. 거센 풍랑을 만난 가운데서도 활짝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말마따나 ‘행복한 슬픔’의 절정이다.


그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이렇게 묻는다. 이제 난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주변에선 심심찮게 가정불화와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존재한다. 나와 내 친구들이 그랬듯 그 아이들 또한 자라나겠지만, 영화 속 코너와 라피나, 그리고 이들의 친구들과 같은 일이 기적처럼 그들에게도 일어나길 바라고만 있어야 할까. 그런 환경에 처한 아이들은 대체 어떤 마음이고, 어른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싱 스트리트>를 통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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