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여성 권력자들.. '막장'인데 아름답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막장 속에 숨은 메시지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권력자들의 암투와 각종 술수는 적어도 남성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아래 <더 페이버릿>)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적어도 권력과 인간의 속성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 한 건 아닐지. 성별로 그 역할과 정체성을 제한하지 않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한 18세기 여성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영화는 절대 왕정의 중심인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과 그의 오른팔이자 실질적 권력자 사라(레이첼 와이즈)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여기에 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하녀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인물로 작용한다.
조금은 달랐던 권력
사실 줄거리와 주요 사건만 바라보면 여느 치정극 못지않은 '막장'의 요소가 다분하다. 정신과 신체가 쇠약해진 여왕, 그 곁에서 일종의 수렴청정을 하는 신하, 그리고 욕망을 품고 수직 신분 상승을 노린 몰락한 귀족가 하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갈등 구조다. 에비게일은 특유의 순수한 면모를 풍기며 왕과 사라에게 접근하며 신임을 얻고, 어느새 둘 사이를 이간한 뒤 사라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영화는 이 세 인물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판단력이 흐려진 여왕이라지만 그는 자신의 기품을 잃지 않으려 한다. 사라 역시 수렴청정으로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정치가로 어려운 상황에서 꽤 지혜로운 결단을 내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애비게일의 처지는 가련해 보이지만 동시에 귀족으로서의 덕목은 아는 인물이다. 관객에 따라 감정 이입할 캐릭터가 갈릴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흔한 정치드라마라면 권력의 속성과 민낯을 노출한 후 인물들의 몰락을 보여주는 식으로 사건을 해결할 테지만 <더 페이버릿>은 특정 사건의 끝이 아닌 각 인물의 심리와 상황,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이 과정에서 남성 정치인들 역시 단순 주변 인물로 묘사되지 않고 앤과 사라, 애비게일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는 식으로 등장한다.
물론 세 여성 캐릭터는 비교적 옅은 화장을, 나머지 남성 정치인들은 짙은 화장을 시킨 걸로 봐서는 일종의 대비 효과를 의식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남자는 예쁘게 꾸며야 해"라며 토리당 당수 로버트 할리(니콜라스 홀트)에게 충고하는 친구의 대사 등을 보면 당시 영국 사회, 나아가 일반적인 남성 중심의 정치드라마에 대한 전복과 대비를 노렸다고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 전복 효과가 이 영화의 전부라 할 수 없지만 결말 이후 잔상이 꽤 가는 편이다. 전작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등으로 끊임없이 기성 이미지의 전복을 노려 온 감독이기에 충분히 <더 페이버릿>의 색다른 반전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는 각본가 데보라 데이비스가 약 20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썼고, 감독과 토니 맥나마라 작가가 4년에 걸쳐 각색한 결과물이라 한다. 대부분의 촬영은 실제 엘리자베스 1세가 머물렀던 햇필드 하우스에서 이뤄졌다.
단순 막장극에 그치지 않도록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하고 사건 구성 역시 한쪽으로 몰리지 않으려 한 노력이 보인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현재 미국 평단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작품.
한 줄 평 : 막장에 세련미를 더했을 때
평점 : ★★★★ (4/5)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관련 정보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 올리비아 콜맨, 레이첼 와이즈, 니콜라스 홀트, 조 알윈 등
각본 : 데보라 데이비스, 토니 맥나마라
수입 및 배급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러닝타임 : 119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9년 2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