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보다 의도가 중요한 사회
SNS를 하다 보면 진심보다 의도가 앞서는 경우를 봅니다.
사진이 좋다면서 달린 댓글이, 알고 보니 다른 사람에게 단 댓글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복붙’ 문구라던지, 국가적인 행사나 기념일, 추모일 등에 ‘깨어 있는 사람‘인 것처럼 올리는 글이 향하는 대상은 ‘나를 추앙해 줄 사람들’인 경우들 말이지요.
제 계정을 팔로우한 사람이 다짜고짜 DM(다이렉트메세지)으로 ’맞팔‘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제가 올리는 사진이 좋다며 팔로우했다는 그들, 정작 자기를 팔로우해 달라는 이유는 ’내가 너를 팔로우했으니까‘이더라고요. 대부분은 무시하며 넘어가지만, 세 번이나 [팔로우-메시지 보내기-언팔로우-다시 팔로우]를 반복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답변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반복적으로 맞팔에 집착하는지’ 물어보자 돌아온 답변은 ‘팔로우 숫자를 늘리고 싶어서’ 였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늘리고 싶은 ‘팔로우 수’가 대체 뭐길래, 싶다가도 일정 숫자가 넘어가면 ‘유명한 걸로 유명한’ 단계가 오고, 그 이후엔 아무거나 업로드해도 추앙받는 곳이 이 생태계이다 보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 계정을 운영하던, 기존에 저와 맞팔로우 상태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사진 대신 검은 배경에 글이 올라와 있어 읽어보니, ‘핀터레스트’에 올라온 사진들을 불펌해 보정 후 마치 자기가 찍은 사진인 것처럼 올렸던 것에 대한 사과문이더라고요. 처음 의문이 제기됐을 때엔 발뺌하려다 증거들이 드러나자 결국 시인하고, 사과문을 게재한 것입니다. 당시 그분은 4000명 정도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던 사람인 데다, 조금씩 광고도 받는 계정이었던지라,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사과문에 달린 댓글들이 하나같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 다음부턴 그러지 마시고 앞으로도 활동해 주세요’ 같은, 응원의 메시지였다는 것이었어요. ‘사진계정을 운영한다는 사람이, 남의 사진을 자기 사진인 것처럼 속이고, 우기려다 들켜서 올린 사과문인데, 그게 실수인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사과문 내용보다 댓글이 더 이상하다’는 댓글을 달았는데, 다음날이 되자 댓글들은 모두 지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문마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즉시 팔로우를 끊었습니다. 가끔 어떤지 들여다보기는 하는데, 오히려 그때 대비 1000명이나 팔로워가 늘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왜 그렇게 팔로우에 집착하는지 단적으로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이 이야기에 나온 분도 저에게 ‘맞팔로우’를 DM으로 요청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이분 때문에 더더욱 맞팔 요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걸지도요.)
감성적인 글귀는 좋아하지만, SNS에 그런 글을 적는 것에는 알러지가 있는 편입니다. 예쁘고 좋은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에는 헤픈 편이지만 댓글을 거의 달지 않아요. 단순하고 피상적인 감상보다 진심으로 감명을 받았을 때에 우러나오는 말을 적고 싶달까요. 제 사진에 달리는 진심 어린 댓글들 또한 물론 고마운 마음이 크지만, 사진을 올리며 적은 저의 문장들을 반복해서 적은 댓글들이라던지, 앞서 이야기한 ‘복붙’ 댓글들 같은 경우를 볼 때면, 사실 안 적느니만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진심이 말로 치환되는 것은 가끔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탓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모두가 익명이면서 가면을 쓰는 세계인 SNS에서 진심을 바라는 것이 모순일까요. 진짜 세계를 사는 것도 피곤한데, SNS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인 제가 이상한 걸까요. 저도 결국 SNS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이런저런 관계라는 건 복잡하고 피곤하니 그저 오늘도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얕은 진심을 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