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은 저주일까

하는 이유가 중요한가요, 하는 게 중요한거지

by 최필록

얼마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1400 게시물 달성 기념'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어려서부터 끈기가 부족하던 사람이었기에 무언가를 꾸준히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했어요. 특별히 뛰어난 재주가 없던 저에게 새로운 능력이 하나 생긴 기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예부 활동을 통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다 사진을 접했습니다. '어쩌면 나 재능이 있을지도..?'라며 도취된 시기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우물 안 개구리',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할 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것들에 대한 능력이 아주 모자란 것을 보면 역시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글도 사진도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지만 동시에, 고통의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것들이기도 해요. ‘창작’이라는 단어의 한자가 그저 만드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만듦‘을 지칭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분명 나보다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감탄이 나오는 결과물들을 척척 내놓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가 솟아납니다. ‘진짜 재능’ 앞에서는 일종의 박탈감마저 들어요. 잘해보고 싶어서 들인 그동안의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기분이랄까요. ‘나는 어떻게 해도 안되는 건가’싶은 생각이 들 때면, 새벽 바다처럼 옅은 우울감이 발목까지 스며듭니다.


재능의 한계를 깨닫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있고, 빠르게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제법 늦게 알았어요. 오래 간직한 물건에는 물질 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인 탓에, 글쓰기와 사진 또한 떠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유명한 작가가 될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뭐 어때‘하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을 적고 순간을 담아보는 중입니다.


지인들에게서 종종 ‘부지런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끄러워지는 마음이 있어요. 사실 저는 천성이 아주 게으른 편입니다(마음 놓고 게을러지겠다고 한다면 바닥에 붙어서 살 자신이 있습니다. 진심으로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있었어요. 둘은 사실 반대말이 아님에도 저는 ’해야 하는 일‘은 곧 ’하기 싫은 일‘이라고 인식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하고 싶은 것만 하니 부지런해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서 1400개의 게시물을 달성한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음에도 말입니다. ‘애매한 재능의 저주’가, 꾸준함이 부족해 꾸준해지기로 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이름표를 붙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 또한 예외는 아니었어요. 어느 쪽이든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글쓰기와 사진 찍기는 그 수단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허나, 탁월한 재능도, 애매한 재능이라도 멋져 보이게 포장하는 능력(혹은 의지)도 없는 저라는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는, 관성처럼 그저 하는 것뿐이더라고요.


‘의미를 잃었으니 표류하거나 침몰하겠구나‘ 싶었지만, 오히려 그 시기부터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지 않으니 부담이 사라졌달까요. 어차피 쓰고 찍는 짓은 놓지 못할 테니, 만들되, ‘기깔나는‘ 결과물에는 집착하지 말자고 여기게 됐습니다. ‘하는 이유’보다 ‘하는 것’ 자체에 무게를 두니, 요즘은 글쓰기도, 사진도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얼마 전 유튜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를 봤는데 오래도록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쓰는 원동력에 대해 묻자, 그가 이런 대답을 하더라고요. ‘어제도 했으니까.’


저 말이 저한테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고요.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만 같고, 쉽게 지치지도 않을 것 같은 말이라서요.


저는 남들이 보기에 잘났지도 못한 글을 쓰고 눈에 박힐 만큼 예쁘지도 않은 사진을 찍습니다. 그래도 이쯤이면 꽤 꾸준한 것 같습니다.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제도 했으니 오늘도 하는 것’이 저주를 이겨낼 방법이 될지도 모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