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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Nov 30. 2020

골목 여행의 도시, 오사카

여행하는 혼자

오사카(大阪)는 화려한 대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저의 첫인상 또한 도톤보리의 글리코 상을 필두로 난바 근처의 형형색색의 간판을 가진 가게들, 많은 관광객들이 가득한 랜드마크 덕분에 제가 살고 있는 곳인 부산처럼 대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만을 가졌었던 것이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2박 3일의 짧은 여행 후에 사진을 다시 꺼내보면서 다시 느낀 오사카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2018년 5월 다녀온 오사카 여행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이라곤 2006년에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티벳 여행이 전부였던 저는 회사 입사 2년 차 휴가로 일본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부산에서 가까운 후쿠오카, 일본의 수도인 도쿄도 후보지에 있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첫 여행지로 가장 선택을 많이 한다는 오사카를 가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의 해외여행 자체도 재밌었지만, 휴가 날짜가 다가오면서 혼자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설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여행 책을 사고, 여행커뮤니티 카페에 가입해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읽고, 숙소를 예약하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것 자체도 해외여행이 주는 특별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오사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글리코 상.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여기에 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도톤보리의 풍경, '하루카스 300'에서 내려다본 야경이나 오사카성의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건축양식도 기억에 남지만 오사카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대부분 많이 걸으며 눈에 담았던 골목들과 가게들이었습니다. 2년이 훌쩍 지난 시간이라 대부분의 기억들을 흐릿해졌지만, 사진으로 많이 남겨둔 예쁜 가게들의 간판을 통해, 그 당시의 공기와 온도를 가늠해보곤 해요. 혼자서 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던 터라,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어딜 가나 영어 메뉴판이 많았고,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는 국내여행과는 다르게 언제 다시 올 지 알 수가 없는 터라 되도록 많은 풍경을 눈에 담아두려 많이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카스 300에서 내려다 본 야경(좌)과 오사카성(우)

난바에서 도톤보리로, 다시 신사이바시 애플 매장을 들렀다 오렌지 스트리트의 빈티지 옷가게까지, 첫날부터 쉴 새 없이 2만보를 채우고, 둘째 날에는 오사카성에서 숙소가 있는 난바까지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찾지 않는 덴마바시역 근처의 시가지 풍경이 가장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성향 자체가 화려한 풍경보단 소소한 일상의 시야를 더 좋아하나 봅니다. 마지막 날 아침에 우메다를 갔을 때에도 우메다의 세련된 건물보다는 나카자키초의 작은 카페들을 구경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으니까요. (다음 해의 해외여행 장소가 교토가 된 데에는 분명 이때의 깨달음의 영향이 있습니다.) 


오사카의 소소한 풍경들.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더 정이 가는 사진들이다.


첫 일본 여행을 오면서 놀란 점에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도로가 강박적일 정도로 깨끗하다는 점인데요, 심지어 유동인구가 많은 도톤보리 거리마저도 관광객들에 의해 더러워졌나 싶다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청소요원(!)들에 의해 깨끗해지곤 하더라고요. 쓰레기뿐 아니라 우리나라 도로에서 흔히 보이는 갈라진 아스팔트라던지, 차선의 페인트칠이 벗겨지거나 하는 것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은 무조건 단정해야 한다'라는, 말 그대로 '강박'이 느껴지는 깔끔함입니다. 나그네로 이 나라를 찾은 사람 입장에서는 지저분한 것보다야 확실히 낫지만, 약간의 공포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두 번째로 놀란 점은 관광객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어요. 너무나도 유명한 글리코 상 앞에서는 일본어보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릴 정도입니다. 거짓말을 조금 섞어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중 1/3은 한국인, 1/3은 중국인, 나머지 1/3만이 현지인이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에서도 '일본 여행'하면 오사카를 가장 많이 추천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음식이 매우 맛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2006년 티벳 여행 당시에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있던 터라, 처음 접하는 일본 현지 음식 또한 그럴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곧 괜한 우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숙소에 짐을 풀고 먹은 첫 끼니였던 '이치란 라멘'부터 출국하기 전 마지막 식사였던 '돈카츠 다이키'까지, 맛있지 않은 음식이 없었으니까요. 일본 내에서도 음식 맛으로 유명한 도시라고 하니,  일본 여행 첫 장소로 오사카를 선택한 것은 여러모로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합니다.


 

오사카에서의 식사들.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 한국인 입맛 버전 메뉴얼까지 있는 이치란라멘(좌)과 떠오르는 맛집이라던 고기극장(우)


낯선 땅에 처음 도착한 이가 하는 혼자만의 여행이었던 탓에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계획대로 움직였던 2박 3일이었지만, 의외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계획에서 벗어나 즉흥적으로 가고 싶었던 골목으로 들어섰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설렘을 안고 들어선 골목에서 마주한 예쁜 가게들을 볼 때마다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글의 제목처럼, 제 나름대로는 오사카는 골목 여행의 도시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보라고 하는 랜드마크들은 볼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 스스로가 사진으로 남긴 저만의 랜드마크에는 저만이 알고 있는 그때의 기분이 남아 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의 기록에 어울리는 만족스러운 순간들이 찍혀 있어, 파일뿐 아니라 인화를 해서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오사카의 작고 많은 가게들. 나름의 예쁨과 나름의 기쁨.


사실 이때의 여행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자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제가 사는 데에 있어서 '일어날 법한' 일은 아니었어요. 국내여행이야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길 때면 드라이브 삼아서 슬쩍 다녀올 수 있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혼자서 찾아가는 고생을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가족들도 혼자 간다는 말에 걱정부터 앞서는 눈치였지만, 꽂히는 일은 어떻게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제 성격을 아는 탓에 나서서 말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막무가내로 다녀온 이 여행 덕분에 왜 사람들이 굳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낯선 곳, 누구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공간에 온전히 나 혼자라는 것. 사람들의 품이 그리워 주변을 기웃거리면서도 정작 고독한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인 저한테는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걷는다 할지라도, 순간을 영원처럼 느낄 수 있는 이런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혼자 하는 여행'에서 외로움은 뒤로 밀려납니다. 어쩌면 '여행하는 혼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어요. 눈에 익은 곳에서는 가라앉아 있던 설렘과 용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죠.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언젠가는 도달할 낯선 골목을 오늘도 기웃거려 봅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어쩌다 마주친 시선이 더 반가웠던 도시.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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