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가치
대한민국에서 ‘해수욕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인 이곳 송도를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니까. ‘송도(松島) 해수욕장’은 1913년 개장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이다. (최초의 해수욕장은 아니라고 한다. 최초는 인천 만석동에 있었던 묘도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송도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소나무 섬’이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송도 바닷가의 입구에 들어서면 ‘송림공원’이라는 소나무 숲으로 이뤄진 공원이 있다. 이곳 일대가 대규모의 재개발이 이뤄지기 전에는 그저 한적한 동네 공원 느낌이었다면, ‘송도 해상 케이블카’의 등장과 함께 이제는 케이블카를 타면서 같이 들리는 하나의 명소가 된 곳이라고 볼 수 있겠다. 케이블카는 해수욕장 입구에서부터 송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암남공원’을 잇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암남공원까지 같이 다녀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송도 바닷가만 둘러보고 가는 것으로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케이블카가 떠다니는 아래로 바다를 발아래에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송도 스카이워크’가 구성되어 있다. 투명한 바닥으로 이루어진 스카이워크에 발을 올리니 어쩐지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최대한 시선을 바닥을 향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스카이워크 끝에 구성된 전망대에서 먼바다를 바라본다. 목을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까 만났던 케이블카가 유유히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 어린 시절 만났던 송도와 케이블카가 개장하기 전에 만났던 송도, 그리고 지금의 송도는 매번 느낌이 다르다.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답게 아직도 부산 내에서는 유명한 로컬 관광지인 데다가 부산 내의 해수욕장 중에서도 해운대, 광안리, 송정에 이어 4번째 정도의 위치는 되는 곳이지만 송도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해수욕장들이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춰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발전하는 와중에, 바다 그 자체의 볼거리만으로 승부하려 했던 송도는 한때 아무도 찾지 않는 그저 그런 바닷가가 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2000년대 들어 정비 사업이 착수됐고, 스카이워크와 케이블카를 통한 암남공원과의 연계 등을 통해 지금은 다시 예전의 명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송도는 크게(내 마음대로) 세 구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가 방금 소개한 송도 초입에 있는 송림공원과 케이블카, 스카이워크의 새로 개발된 관광 자원들이고, 두 번째는 본격적인 송도해수욕장 바닷가이다. 사실 송도의 해변은 큰 특색이 있는 바다는 아니다. 해운대나 광안리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바다이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송도의 매력은 이곳 바닷가에 자리한 숙소에서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볼 때에 진정으로 발휘된다. 지난 1월 우연한 기회에 이곳 오션뷰 호텔에 숙박할 기회가 있어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 일어나 바라본 일출은 차가운 겨울 아침 공기를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부산 관광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특별한 여행지로 송도를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 세 번째 구간은 해수욕장의 반대편 끝자락에서부터 이어지는 암남공원 일대이다. 앞서 말했듯 이번 취재에서는 암남공원을 둘러보지 않았기에 차후에 암남공원은 기회가 있다면 다른 글에서 만나기로 하고 한낮의 산책을 마쳐본다.
바다 냄새가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바다를 끼고 살아온 나지만, 아직도 탐험하지 못한 바다들이 많다. ‘대한민국 공설 1호 해수욕장’의 이름을 달고 있는 송도는 예전 그대로의 오래된 바다를 간직한 채, 새로운 것들을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있는 표정이었다. 1시간 남짓한 송도 바다는 공존의 바다였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존중하고 새로운 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어쩌면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