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람이 작문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
돌이켜보면 나는 제대로 된 작문 교육을 들은 적이 없다. 대학 전공은 철학과 심리학이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문예부 활동을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나는 대로 글을 끄적이는 수준이었다. ‘국어’와 ‘문학’ 교과는 작품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루었던 탓에, 당시의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소년이었음에도 글 쓰는 방법에 대한 강의는 거의 듣지 못했다.
얼마 전에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게 됐다. 상황에 맞는 낱말을 쓰려 몇 번이고 고심하고 고쳐가며 완성한 글들도 있고, 번뜩이는 생각을 놓칠 세라 한 번에 쭈욱 써 내려간 즉흥적인 글들도 있다. 내가 쓴 글들은 대부분 쓰기 전에 어떤 주제를 정하고, 개요를 짜고, 거기에 맞춰 작성하기보다는 대강의 소재만을 가지고 ‘일단 쓰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의도한 분위기와 완성된 글이 많이 달라질 때도 있고, 글을 쓰다 뜻밖의 주제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흘러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볼 때면 ‘갑자기 왜 이렇게 되는 거야?’ 라던지 ‘흐름이 영 매끄럽지 않은데?’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작문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나는 아직 아마추어라는 이야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은 적이 있다. 소설을 쓸 때면 항상 정형화된 루틴을 지키며 생활을 하고, 글의 퀄리티가 어쨌든 정해진 분량만큼은 무조건 쓴다는 그의 글쓰기 비법을 읽고, ‘역시 세계적인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회사 생활 때문에 억지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야만 하는 것조차도 버거운데, 스스로 루틴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가며 글을 쓴다는 것은 감히 게으름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한 달에 다섯 편의 글을 쓰기로 스스로 약속하고 그것을 7개월째 지키고 있는 것만 해도 나에겐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온라인을 통해 작문에 대한 강의라도 들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조금 희미해지긴 했어도 아직 나의 최종 목표는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앞선 에세이에서 말했듯,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하루에 일정 분량의 글을 꾸준하게 쓰기 위해서는 나의 ‘즉흥적인’ 글쓰기 방식은 알맞지 않은 탓에, 제대로 된 작문 방법을 알고 그에 따라 쓴다면 어쩌면 짧은 소설 하나쯤은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생각을 다시 고치게 되었다. 내 글은 비록 어딘가 어설프고 개연성이 없기도 하겠지만, 흘러가는 대로 쓴 글인 만큼 수월하게 읽힌다. (사실 이건 내가 글쓴이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시냇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듯, 역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지막에 도달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장점을 포기하면서 스타일의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지금의 글쓰기 방식을 고수하되, 조금 더 신중하게 쓰는 방식으로 앞으로의 작문의 방식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로 했다.
소소할지도 모르지만 다름이 아니라 발행 전에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말주변이 부족한 편인 탓에, 내가 쓰는 글은 가끔 맞지 않는 어미를 쓰거나, 앞과 뒤의 호응이 안 맞을 때가 있다. 눈으로만 훑었을 때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오타도 읽었을 때는 빠르게 파악이 된다. 너무 과한 표현이나 단어는 삭제하고, 부족한 설명은 덧붙이는 과정도 포함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퇴고’라고 부르는 것을, 아마추어 글쟁이인 나는 이제야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항상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야만 행동에 옮기니, 뭐든 한 박자 늦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그게 나의 스타일이니, 조금은 고집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6월에 써야 할 글들도 벌써 몇 편이 기다리고 있다. 숙제처럼 미뤄놓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