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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Nov 03. 2020

다시, 티벳

여행보다는 고행에 가까웠던

제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은 2006년 여름에 친구들과 셋이서 다녀온 티벳 배낭여행이었습니다. 40일 정도의 계획이었으니까, 여름방학 내내 여행을 다녔던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중간에 계획이 바뀌어서 총 45일 정도 여행을 했었습니다.) 돈 없던 대학생 신분으로 다녀온 여행이라 당시 저렴했던 중국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잠자리며 먹을거리, 교통수단 등에서 최대한 절약하며 다녔어야 했어요. 여행기간도 긴 데다가 예상치 못한 변수도 많아서 막바지엔 정신적으로도 매우 예민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짧게나마 이 여행에 대한 소회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아, 키보드를 두드려봅니다. 저에게는 가장 찬란했던 여행이자, 누군가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던 여행이기도 했으니까요.  


티벳은 현재 공식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는 없습니다. 중국에 속한 자치령 지역이지요. 우리는 중국 대륙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여, 쓰촨 성(사천 성)을 통하여 티벳자치구에 들어서는 루트를 선택했습니다. 쓰촨 성에서 티벳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낯빛이 붉고 기골이 장대한, 우리와 닮은 중국인들이 아닌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장족(藏族)이라 불리는 민족으로, 티벳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가 이 장족이라는 것이 정설이라고 합니다. 쓰촨 성의 청두(성도)에서는 관우를 모시는 제당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삼국지의 주인공이자 촉나라 황제였던 유비보다, 관우를 더욱 신성시하는 이유가 어쩌면 티벳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나. 강한 햇살에 얼굴은 타고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아 몰골도 초췌하다.


본격적인 티벳 입성에 앞서 중국에서의 약 10일가량의 시간 동안 우리는 고산병 약을 매일 먹어야 했습니다. 티벳은 대부분이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도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좁은 도미토리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며 단기간에 많은 거리를 이동했던 탓에 벌써부터 지쳐있었지만 사전조사 때 알아본 티벳의 아름다운 경관을 기대하며 드디어 티벳으로 들어갈 날이 다가오게 됩니다.


야크떼(좌)/버스를 타고 올라가던 중(우), 해발 6000미터 이상의 고개였다.


이번 여행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던 K와, 대학교에서 급속도로 친해진 동기 H, 그리고 저, 이렇게 3명이서 가게 되었는데 K와 H는 그 전까진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둘 다 '나'라는 공통된 친구를 두었으니 저는 그 둘도 서로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하는 동안에 둘은 서로 맞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중국어가 능통했고, 중국 여행 경험도 다수 있던 K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리더였는데, 여행 내내 뭔가 우울한 기운을 풍기는 H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습니다. 본디 감성적이고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말 수가 적어지는 H에게도 K의 강압적인 방식이 불편했을 것은 마찬가지였을 테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예견되었던) 문제의 그 사건이 발생합니다.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저희는 1인당 예산 80만 원가량으로 말 그대로 '극한의 배낭여행'을 계획했던 터라, 당시 중국인이 아니면 허가증이 있어야 했던 티벳 입국을 허가증 가격을 아껴(허가증 가격이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국인인 척하고 들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티벳자치구 진입 시에만 딱 한 번 필요했던 허가증이었기에, 모험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었죠. 계획이 실패한다면 계획을 수정해 안전한 중국 내부에서 여행을 마치기로 합의했었지만, K는 '아프로 스타일'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던 H에게 중국인 같지 않아 보인다며 머리를 자르길 권유했습니다.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H는 이를 거절했고요. K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H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계획이 실패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면 남은 티벳여행은 같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덧붙여, 저에게 매우 어려운 선택이 강요됩니다. K는 H와는 같이 할 수 없으니 본인 혼자서라도 티벳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고 저에게 H와 함께 남은 기간 동안 중국 본토만을 여행할 것인지 K와 같이 티벳으로 들어갈 것인지 결정하길 원했습니다. 24살의 어린 저에게 닥친 이 딜레마는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가장 큰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남은 여행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쪽으로 K와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여행 내내 H가 함께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책임의 무게를 져야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우리는 지쳐있었고, K와 H의 신경전 때문에 중재하는 저도 매우 예민해져 있었던 때라 냉정하게 판단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H에게 모자를 씌운다던지 하는 다른 선택지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티벳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경계는 생각보다 삼엄하지 않았고, H는 어쩌면 아프로헤어를 하고서도 티벳의 눈부신 경치를 볼 수 있었을 겁니다.


흔한 티벳의 풍경. 하늘이며 초원이며 승려들의 옷 색까지 진득진득하다.


그 후의 30일가량의 티벳의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찬란했습니다. 티벳의 여름 날씨는 낮과 밤의 낯빛이 다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빛을 그대로 쬐는듯한 고온 건조한 날씨라면, 밤에는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 겉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지요. 한여름에 5,000미터 이상의 고산을 걸어도 땀이 나지 않는 천혜의 날씨에, 코발트블루 색깔의 하늘은 또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그런 경치를 감상하며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 편에 자리 잡은 죄책감은 밤마다 저를 괴롭혔습니다.


티벳의 수도인 라싸에 도착한 날에, 우리는 티벳의 상징물인 '포탈라궁'을 보러 갑니다. 그리고 그 웅장함에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신화에 나오는 '모비딕' 같은, 존재감이 느껴졌습니다. 건물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낀 건 포탈라궁이 처음이었어요. 매우 진귀하고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제가 찍어놓은 포탈라궁 사진을 볼 때면 그 기분이 되살아나 심장이 짜릿해지곤 합니다.


티벳의 상징 포탈라궁. 지금도 사진을 볼 때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라싸에서 K와 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온라인에서 여행 메이트를 찾다 만나서 같이 라싸까지 온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 그리고 혼자서 인도와 몽골 여행을 섭렵하고 이번에는 티벳까지 도전한 여자 한 분까지. 라싸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는 한국인들이 많았고, 서로가 얼마나 고생하며 이곳까지 도달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감했던 우리는 금세 친해졌습니다. 자전거를 빌려 라싸를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전통시장에서 기념품을 서로 골라주기도 하며, 반짝이는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K와 나는 H를 이곳에 데려오지 못했지만, 새로운 인연들 덕분인지, 라싸의 분위기 덕분인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4일간 머물렀어야 할 라싸에서 열흘 정도 머무르게 됐습니다. K와 저녁에 술을 한 잔 기울이며 눈물을 쏟고 H에 대한 감정을 토해내고 나니, K도 저도 조금은 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싸에선 아침부터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도 가끔 뉴스에서 티벳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주목하게 됩니다. 20대의 내 인생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이었고, 가장 큰 고생이었던 여행이었어요. 저는 차라리 여행보다는 고행에 가까웠던, 기억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입니다. 우정이라는 것의 얄팍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선택이라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쪽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음으로 인한 책임까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 계절이었으니까요.


지금의 내가, 다시 그 순간의 선택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지금에 와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따름입니다. K와 H, 그리고 나, 누구의 탓도 아닌 선택이었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단지 2006년 여름, 우리를 만나게 하고 헤어지게 했던 그때의 티벳이 누구에게는 가장 강렬한 여행의 기억으로, 누구에게는 가장 우울한 귀향으로 기억될까 아직도 염려되는 까닭에, 한참이 지나서야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두려울 따름입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H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내가 가진 마음의 짐을 덜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고, 그가 가진 마음의 짐을 나눠 메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14년 전에 각자 하나씩 메고 떠났던 배낭처럼, 딱 그만큼의 무게만큼만 어깨에 지고 가자고 말하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H와 함께 티벳 여행을 함께 떠나볼 계획을 버킷리스트에 적어봅니다.


티벳 여행 사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무언가 시작되려 하는 느낌이라 매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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