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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Nov 20. 2021

나도 자란다

프롤로그

10여 년이 훌쩍 넘게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파릇한 20대 중반에서 노안이 온 40대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짧게는 한번 만난 아이도 있었고, 길게는 몇 년을 한결같이 매주마다 만났던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을 다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아니다. 만남의 횟수가 기억의 기준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망각의 동물인지라 오래 만난 아이를 더 잘 기억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한계다. 그럼에도 피부의 남은 강렬한 감각만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아이들이 있다.

단편의 기억, 한 컷의 장면일지라도. 아이들은 지금의 나로 있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랐으니까.


나는 지금부터 나를 자라게 해 주었던 고마운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미약한 내 기억의 끈을 부여잡고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과 함께 했던 보석 같은 시간을 숨은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려 한다. 이 작업은 내 성장 보고서와도 같으니까.




첫 만남이었다. 나와 그 아이의.


아이와 단 둘이 방에 들어가서 놀이를 할 거라곤 그때까지 생각해 본 적 없이 없었다.


어느 연예인이 TV에 나와서 "저는 세상에서 닭이 제일 무서워요. 저랑 닭을 한 방에 두고 문을 닫으면 저에겐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에요."라고 했던 것처럼. 그때까지 나는 아이를 두려운 존재로 느끼고 있었다. 어리면 어릴수록.

아이와 단 둘이 방에 있다면 뭘 하지?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난감이 일 아닌가. 필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도 이런 난감한 상황을 그때까지는 잘 피해 다녔었고, 나의 무능함 또한 증명되지 않았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새집 둥지를 머리에 쓴 듯한 아이는, 나를 쳐다보기는커녕 사물 보듯 무관심했다.

놀이실을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더니 뜬금없이 "물", "물", "물"을 크게 외쳤다. 나는 얼른 "목 마르니? 물을 줄까?"라고 묻자, 아이는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벽을 따라 휙휙 빠르게 움직이며 또다시 "물", "물"만 했다.


그제야 알았다. 대화가 안 되는 아이라는 것을. 눈 맞춤도 되지 않고, 대화도 되지 않는 아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는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나를 놀이실에 밀어 넣은 나의 윗사람에 대한 원망이 마음 한가득 올라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눈 맞춤도, 대화도 할 수 없는 아이와 30분 넘게 남은 시간 뭐하지? 일생일대의 난관이었고 도망갈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 놓인 기분이었다.

아이의 흥미조차 끌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은 그 아이를 만나고 단 몇 분, 아니 단 몇 초 만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어려서부터 주어진 것을 잘 해내야만 버틸 수 있었던 공교육 시스템에 나름대로 잘 버티며 살아온 나였기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그래. 해보자.' 근데 뭐부터 하지?


먼저 아이의 시선을 끄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자~ 습습 후 후.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좌절된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몸을 곧추세웠다. 나의 굳은 의지를 한 껏 담아서.

그러고서 한 일은 아이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아이는 놀이실의 벽을 손 끝으로 닿게 하고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는 맥락이 없는 단편적인 단어였다. 필요해서도 아니고 대화를 하기 위한 외침도 아니었다. 밖에서 보기엔 무의미한 소리 같았다.


그렇게 놀이실의 벽, 물건 등을 모두 툭툭 쳐보기도 하고, 훑기도 하는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다 이내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OO는 벽을 계속 훑고 지나가네."하고.

나의 말이 들리는지 아님 들리지 않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으니까.


"선생님은 OO와 특별한 놀이를 하려고 기다렸는데, OO는 선생님과 놀이를 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제야 아이는 나를 쳐다봤다. 어쩌면 '그래 한번 더 말해봐. 뭔 말을 하는지나 보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의 마음을 가늠할 길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시선을 내게 향하게 한데 성공했다는 마음에 나는 조금 흥분했었던 거 같다.

"선생님은 OO랑 물감놀이도 할 수 있게 준비했고, 비눗방울도 준비했고. 봐봐 여기 다 있지?" 하며 놀잇감을 일일이 꺼내 보이며 아이에게 말했다. 마치 홈쇼핑의 쇼호스트처럼.


아직 시선은 내게 남아 있다는 것에 나는 희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 봐봐. 선생님은 OO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OO는 어떤 것을 좋아할까?"

아이는 내게 다가왔고, 내가 보여주었던 것 중 종이와 풀을 빼앗듯 낚아채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려서 거칠게 종이를 찢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슬금슬금 아이 곁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OO가 빨간색 색종이를 찢어서 여기 붙였네."라고 아이의 행동을 말로 읽어줬다.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아이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색종이를 찢어서 붙였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다. 나 역시 아이와 단 둘이 놀이실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더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무지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건지, 새삼 깨닫게 되었달까.


여하튼 아이는 색종이를 난도질하듯 찢었고 이내 다시 붙이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에만 열중했다. 아이의 동작이 그 아이의 말인 것처럼.

놀이실 안에서는 종이가 찢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의 방에서 아이와 나는 끝까지 함께 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에 나를 무생물 보듯 바라보던 건조한 시선은 놀이시간 마칠 즈음엔 좀 부드러워졌다고 느꼈다. 어쩌면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시간을 마치고 나는 털썩 주저앉았더랬다. 일생일대의 위기에서 벗어난 느낌이었으니까. 딱히   없는데 운동회 다음날 같은  상태였다. 그만큼 긴장했었나 보다.


그렇게 아이를 1년 넘게 만났었다.

어느 날은 바닥에 있는 큰 모래 상자에 물을 가득 붓고 테두리를 넘길랑 말랑 하게 만들어서 나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놀이실 바닥 전체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아이가 가고 나면 나는 끈적이는 방바닥을 닦느라 사투를 벌여야 했었다.

아이는 매번 내게 숙제를 던져줬고, 나는 그걸 간당간당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레고 피스가 가득 든 상자 3통 모두를 바닥에 던져놓듯이 펼쳐놨다.

'맙소사. 오늘은 저 피스를 정리하느라 애 먹겠군. 오늘 숙제는 레고 구만.'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아이는 연신 뒤적이면 뭔가를 찾았다.

창문 2개와 문 1개.

이 3개의 피스 때문에 레고 박스 3통을 부어서 펼쳐놓은 것이었다.

오 마이 갓을 외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아이가 뭘 하려고 그걸 찾았는지.


이 일은 1년 반이 조금 넘게 만난 날이었다.

그 창문을 넓은 레고 판에 세워서 놓고, 문을 일렬로 놓은 다음. 모두 문을 활짝 열었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창문과 문이 모두 일제히 열린 상태에서 아이는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담자인 나에게 자신처럼 방바닥에 엎드리라고 끌어당겼다.

나는 아이와 마주 보는 위치에 가서 방바닥에 냅다 엎어졌다.

그리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2개의 창문과 문이 터널처럼 일렬로 세워져서 문을 활짝 열고서 그 안에서 아이는 나와 눈 맞추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눈물은 삼켰었다. 너무 오버스러운 행동일 테니.

그러나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환희를 넘어 그 무언가가 내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맺히는 건, 슬퍼서가 아니라. 감동이 밀려와서다.


처음 내게 눈 맞춤을 하지 못했던 아이는 자신의 세계로 나를 드디어 초대하고 자신과 눈 맞춤을 하도록 끌어당긴 것이었다.

아이는 드디어 나를 자신과 통한다고 알려준 거였다.

나는 이제 아이와 통하는 사이가 된 거다.

지저스!


처음으로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 탈진이 없었다. 오히려 주체할 수 없는 업된 마음으로 팔짝팔짝 뛰었달까.

내 심장은 지금도 그때처럼 뛰고 있다.

그 아이는 내게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 아이였다.




그 이후 아이와의 만남이 두려움에서 기대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겁내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은 내게 보석 같이 빛나고, 보물처럼 캐내야 하는 가능성이다.


가끔 생각한다.

잘 지내고 있을까?

멋있게 자랐겠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생각을 하는 아이가 되었을까?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겠지?

결혼은 했을까?


이런 상상을 하고 있다 보면 나는 행복해진다.

첫 만남이 있었던 아이 이후에도 마음에 새겨진 아이는 계속 이어졌다. 그것이 행복했던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혹은 아쉬운 기억이든.

아이들은 내게 무수히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들고, 그 감정들이 결국은 나를 자라게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슬프고, 화나고, 견디고, 애타 했다.


무심히 스치듯 지나가는 행인 중에 그 아이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 역시도 지금껏 자라온 것처럼.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자라온 시간들을 풀어내 보려 한다.

그 보물 같은 일들을.


이제 여러분도 초대하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보물찾기 여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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