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관계 #7
지나치게 쓸모에 몰두하는 시대다. 자신의 가치 잣대가 '쓸모'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누구로부터의 쓸모일까? 누구에게 쓸모가 있길 바라는 걸까? 무엇을 위해 쓸모 있길 바라는가?
그냥 모두가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면 된다고 여긴다. 어떻게 하는 게 '열심'인지도 모른 채 자신을 소모하고 깎아가면서 '열심'을 낸다. 그렇게 부서져라 움직여서. 결국 자신은 '재'가 된다. 그러면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걸까. 누구에게 증명하고 싶은 걸까.
이건 능력의 문제도 아니고 요령의 문제도 아니고 가치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피와 살을 발라내듯이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우리들이 오늘은 왠지 애처롭게 느껴진다. 조금 피로하지 않은가. 아니 솔직하게는 많이 피로하다.
그냥 열심히만 살 때는 모르다 어느 순간 공허함이 다가올 때 쉬이 박차고 일어서기란 쉽지 않다. 그걸 사람들은 '우울'이라고도 하고, '무기력'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번아웃'이라는 말도 붙였다.
자신에게 향한 칼. 자신을 향한 난도질. 자신을 향한 스스로에 대한 징벌적 태도. 이 모든 것이 '쓸모', 혹은 '열심'을 부추긴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는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자신을 그토록 못 살게 구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문득 안타까움이 사무쳐서 책상에 앉았다. 안쓰러움을 등에 이어, 오늘도 숨을 헉헉 거리며 살아내는 사람들이 너무 애처롭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걸까? 그들에게 사라진 유쾌함은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 잠시라도 숨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유를 잃어버린 자들과 같은 삶. 최근 들어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자유롭고 싶다'라는 말이다. 자신의 삶을 옥죄면서까지 쓸모를 증명할 수 없는 삶이 자유롭지는 않을 테니까. 누가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걸까. 누가 강요하는 걸까.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렇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을 때도 당신은 자신에게 무척이나 가혹했다고.
어릴 적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흔하디 흔하게 듣던 말. 지금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대물림 되는 족쇄처럼 세대를 이어간다. "그거 해서 뭐 하려고?", "그거 꼭 필요한 거야?", "해서 뭐 하게?" 따위의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대하지 않고 강철의 쇠붙이처럼 차갑게 대하는 당신에게 나는 말한다.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도 충분해요.", "당신의 존재 자체가 쓸모니 염려하지 마세요."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매일 애쓴다. 근데 누가 나의 쓸모를 평가한단 말인가? 누구에게 내 쓸모를 평가받으려 한단 말인가?
당신의 쓸모는 이미 이 땅에 태어나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해악을 끼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말한다. 왜 꼭 극단적인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까지 자신을 평가절하하냐고. 그렇게까지 극단적 비교를 통해서 얻는 게 무어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이토록이나 어렵다는 걸 또다시 느낀다.
오늘 하루 처절하리만치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애쓰는 당신. 힘내세요.